국민일보 쿠키건강플러스는 2016년을 여는 첫 번째 이야기로 질병 치료 최일선에서 환자 곁을 지키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병원은 24시간 불이 꺼질 수 없는 공간이자, 희망과 기쁨, 좌절과 슬픔이 함께하는 곳입니다. 특히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환자만을 바라보며 사투를 벌였던 대한민국 의료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24시간 병원의 불을 밝히는 의료진을 응원하며 독자여러분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병원도 연말연시면 그 모습을 바꾼다. 12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탄절 트리다. 하지만 여느 백화점이나 거리에 세워진 화려한 트리와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병원의 트리는 ‘소원트리’다. 환자들은 새해에는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종이에 적어 매달아 놓는다. 병원의 ‘소원트리’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펜을 든다. 펜을 들어 소원을 적는 이들은 지금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환자이자 보호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아프고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게 해주세요. 제발 간절하게 빌게요.”
“제 소원은 패션디자이너입니다. 저희 가족 그리고 강아지 모두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이 세상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행복의 미소만이 가득한 그날을 기대하며.”
연말연시 한껏 들뜬 분위기의 도시풍경을 병실의 작은 TV로밖에 볼 수 없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열리는 작은 이벤트로 그 호젓함과 먹먹함을 채운다. 내년 겨울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이란 소망을 품은 채로 말이다. 병원 로비에서는 새해를 알리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한 달 째 입원 중인 최현석(52·남)씨는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병실 복도를 걷는 일이 전부다. 서글픈 생각이 들지만 병원의 열리는 작은 이벤트로 잠시 기분전환을 해본다”고 말했다.
새해에 병원 내부에서 그 모습이 가장 바뀌는 곳은 어린이병동이다. 새해를 알리는 소품들이 어린이병동 복도에 비치된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의 한 간호사는 “엄마, 아빠랑 놀이공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특히 주사를 놓일 때 아이들은 “주사 그만 맞고 싶어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환아들의 솔직한 감정 표현 때문에 의료진은 때론 울적해진다.
새해를 한국의 병원에서 맞는 외국인환자가 늘고 있다. 한국의료의 우수성을 알고 제 발로 찾아온 외국인 환자도 있지만 현지의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자국에서 치료하지 못하고 한국행을 택하는 슬픈 사연의 환자들도 있다. 서울대병원 국제진료센터팀은 “현지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오는 경우 이곳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병원을 들어온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왔더라도 모두 환자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언어별 코디네이터가 병원에 상주하며 한국이 낯선 외국인환자의 정서적인 부분을 채워준다.
의료진에게 달력의 빨간 날은 큰 의미가 없다.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서울대병원에서 간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아들의 간이 아버지에게 이식됐다. B형간염으로 손상된 간은 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이행됐다. 평생을 두고 아버지를 괴롭힌 간은 아들의 건강한 간의 일부가 새롭게 대체된다. 서경석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생체간이식은 대부분 가족 사이에서 이뤄진다. 이식수술 후 가족 간의 유대감이 한층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는 간을 내어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행여 자신 때문에 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 늘 염려한다. 아들은 건강을 되찾은 아버지를 보며 기뻐한다. 그런 그들을 보며 간이식술을 하는 의사로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새해 소망은 건강이다. 그들을 치료하는 의료진의 소망도 다르지 않다. 병실 또는 수술실 밖에서 의사의 손을 부여잡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보호자들의 모습과 힘든 내색 없이 옅은 미소를 보이는 의사의 모습은 해가 바뀌어도 변함 없는 병원의 모습이다. 김동식 고대안암병원 외과 교수는 “수술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이후에도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헤쳐 나가야할 단계들이 많다. 우리 의료진을 믿고 생명을 맡긴 환자와 보호자에게 새 삶과 희망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들을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새희망 다지는 송구영신 병원의 그해 마지막 24시… 긴장… 분주… 그리고 생명찬가 큰 울림
입력 2016-01-03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