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9도까지 내려갔던 싸늘한 겨울공기가 구릿빛 얼굴에 부딪혔다. 분주했던 퇴근길도 잦아든 28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맞은편의 ‘평화의 소녀상’은 혼자 길 위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둘러주고 씌워준 노란색 목도리와 털모자 차림이었지만 철거니, 이전이니 하는 얘기가 나와서인지 유독 추워 보였다. 굳게 쥔 주먹 위에는 갈색 털장갑과 휴대용 손난로가 놓여 있었다.
오후 10시쯤 회사원 조기순(57)씨가 친구들과 소녀상 앞에 멈춰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4명이 돌아가며 휴대전화를 꺼내 소녀상과 사진을 찍었다. 왜 찍는지 물었다. 조씨는 “오늘 정부에서 일본이랑 합의를 했다는데 정작 피해자 할머니들과는 합의가 안 된 모양이다. 혹시 소녀상을 여기서 보는 게 마지막일지 몰라 오늘 이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났다”고 했다.
조씨 일행이 떠난 자리를 한 부자(父子)가 이어받았다. 홍우진(43)씨는 아버지 대철(67)씨와 함께 소녀상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그는 소녀상 철거·이전 논란에 대해 묻자 “타결도 중요하지만 사죄가 먼저 아니냐. ‘땡처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아버지 홍씨는 “우리 때의 어른들 아닙니까. 이분들이 느낀 것을 우리도 같이 느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 나온 부자는 일부러 소녀상 앞을 지나 밤거리를 걸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거리에 인적이 드물어졌다. 이때 임시로 일본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트윈트리타워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여자를 건물 입구에 내려주고 있었다. 50여명이 이를 지켜봤다. 다음 달 방영될 TV 드라마의 막바지 촬영 현장이었다. 누군가 확성기에 대고 “비켜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대사관은 기존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느라 바로 뒤편의 이 건물에 입주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하겠다”고 언급했다. 소녀상과 관련된 ‘일본대사관의 안녕과 위엄’이 거론된 날, 정작 일본대사관 앞에선 왁자지껄한 드라마 촬영이 한창이었다. 촬영은 29일 오전 2시쯤 끝났다.
뿌옇게 동이 텄지만 소녀상에는 냉기만 느껴졌다. 오전 7시가 되자 출근길 직장인들이 외투에 고개를 파묻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바삐 걸어갔다.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47개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이번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굴욕적 합의이자 양국 정부의 졸속 야합”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점심시간에 가수 이광석(43)씨가 소녀상 옆에서 공연 준비를 했다. 그는 “마음은 춥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만큼은 아닌 것 같다”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씨의 공연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던 대학생 김선희(21·여)씨는 “수요집회에 친구들을 데려오기 위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림책 작가 신혜원(37·여)씨는 붓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얼굴을 그려 소녀상 발치에 뒀다. 그는 “이렇게라도 해서 일본이 할머니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소녀상의 발이 시릴까 시민들은 담요와 목도리로 발을 덮어줬다.
30일에는 광복 70주년인 올해의 마지막 ‘수요집회’가 열린다. 매년 마지막 주 수요집회에선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한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올해 아홉 분이 돌아가셨다. 진정한 추모는 위안부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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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3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