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른 산유국들… ‘에너지 복지’도 줄줄이 포기

입력 2015-12-30 04:00
저유가로 재정위기를 맞은 산유국들이 그간 유지해 온 ‘에너지 복지’ 정책 기조를 잇달아 포기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이 이미 연료보조금 삭감을 실행한 가운데 올해 100조원대 재정적자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가 29일(현지시간)부터 국내 일반 휘발유값을 무려 67%나 인상키로 했다.

◇재정적자 114조, 돈줄 바닥난 ‘중동 부국’ 사우디=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은 올해 역대 최악의 재정적자에 직면한 사우디가 휘발유와 전기 등 각종 에너지 사용료를 평균 40% 가까이 인상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국내 휘발유 가격은 대폭 인상됐다. 사우디 관영SPA통신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기존에 ℓ당 0.60리얄(약 192원)이던 고급 무연휘발유 가격은 0.90리얄(약 288원)로 50% 올랐고, 0.45리얄(약 144원)이던 일반 휘발유 가격은 0.75리얄(약 241원)로 67% 껑충 뛰었다. 지난 10월 전력과 물, 디젤연료 등에 대해 향후 5년간 보조금 축소를 선언한 데 뒤이은 조치다.

이런 조치의 배경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이던 유가가 30달러대로 곤두박질치는 등 심각한 저유가로 인한 재정적자다. 사우디는 올해 980억 달러(약 114조5620억원)의 재정적자를 봤다. 재정수입은 1620억 달러(약 189조3100억원)에 그쳤지만 지출은 2600억 달러(약 303조8400억원)에 달했다. 이런 재정수입 규모는 지난해보다 42%가 줄어든 것으로 2009년 이후 최저치다.

◇바닥 없는 유가 하락세, ‘에너지 복지’ 포기하는 산유국들=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3위 석유수출국인 UAE는 지난 8월 재정 확충을 위해 연간 35억 달러(약 4조866억원)가 소요됐던 연료보조금을 폐지했다. 앞서 오만과 바레인, 이집트도 연료보조금을 일부 혹은 전액 삭감했고 앙골라, 가봉, 인도네시아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와 이란도 보조금을 축소했다.

세계 원유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였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매년 200억 달러(약 23조3820억원)에 달하는 연료보조금 등에 힘입어 세계 최저가격인 2센트(23원)에 휘발유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일 총선에서 승리한 야권이 심각한 재정적자를 감안해 정부에 원유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원유생산량 조절 등이 이뤄질 경우 베네수엘라 국민들 역시 기름값 인상을 받아들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산유부국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핵 협상 타결로 다음달 중 석유 수출이 재개될 예정인 이란이 하루 200만 배럴 정도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투자기관인 골드만삭스 등은 유가가 20달러대까지 추락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28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전 거래일보다 1.29달러(3.4%) 떨어진 배럴당 36.81달러에 마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