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커지는 불협화음’에 결별 선택… 서울시향 예술감독 사의

입력 2015-12-29 18:31 수정 2015-12-29 21:41

정명훈(사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서울시향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29일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에게 예술감독 사임 의사를 전달하고, 직원 및 단원들에게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31일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정 감독은 예술감독 재계약을 앞두고 부인 구모씨가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한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사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울시향은 28일 이사회를 열어 정 감독에 대한 계약 연장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내년 1월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정 감독은 편지에서 “서울시향에서 10년의 음악감독을 마치고 여러분을 떠나면서 이런 편지를 쓰게 되니 참으로 슬픈 감정을 감출 길이 없다”며 “여러분의 음악감독으로서의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음악보다 중요한 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인간애이며, 이 인간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특히 박 전 대표의 직원 성희롱·막말 논란에 자신이 연루된 것처럼 비친 데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향 단원 여러분이 지난 10년 동안 이룩한 업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 업적은 전 세계에서 찬사받아온 업적”이라며 “이것이 한 사람의 거짓말에 의해 무색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거짓과 부패는 추문을 초래하지만 인간의 고귀함과 진실은 종국에는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감독은 “지금 발생하고 있고 발생했던 일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은 박해였는데 아마도 그것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될 수 있는 한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또 “직원들이 이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다 못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는데, 이제 세상은 그 사람들이 개혁을 주도한 전임 사장을 내쫓기 위해 날조한 이야기라고 고소당해 조사를 받고, 서울시향 사무실은 습격을 받았고, 이 피해자들이 수백 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조사받아 왔다”며 “수년 동안 제 보좌역이자 공연기획팀 직원인 사람은 그녀의 첫 아기를 출산한 뒤 몇 주도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3주라는 짧은 시간에 70시간 넘는 조사를 차가운 경찰서 의자에 앉아 받은 후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분노를 토로했다. 그는 “이것은 제가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를 끝으로 서울시향을 완전히 떠나게 됐다. 그는 내년에 예정된 정기공연 9회와 서울시향의 해외공연, 말러의 교향곡 6번 녹음도 맡지 않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