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분쟁의 불씨는 그대로 남았다. 과거사 청산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던 한국-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외교적으로 합의했지만, ‘법적 책임’ 부분은 또 슬며시 비켜갔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치적 ‘위로금’이 아닌 사법부 결정에 근거한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해석 분쟁을 부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의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잘못 꿴 첫 단추=청구권협정을 놓고 양국은 애초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한국 정부는 협정자금으로 받은 3억 달러가 법적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대가’는 아니라면서도 대내적으로는 ‘배상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상반된 입장을 취했다. 식민통치를 합법이라고 주장해야 했던 일본 정부는 아예 ‘독립 축하금’이라고 했다. 경북대 김창록 교수는 “35년 일제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핵심 문제를 얼버무린 어설픈 봉합이었다”고 했다.
양국 정부의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난 것은 노무현정부 들어서다. 2005년 8월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선언했다. 법적 책임이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협정을 통해 다 해결됐다는 일본 입장을 정면 부정한 것이다. 김 교수는 “협정 하나를 두고 피해자와 양국 정부, 사법부의 생각이 모두 다르다”며 “이렇게 불완전한 협정을 대체할 합의를 제시하지 못하면 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왜 ‘법적 책임’ 회피하나=일본은 1990년대 들어 피해자의 사과·배상 요구가 거세지자 ‘사과 전략’으로 돌아섰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대표적이다. 다만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도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단 한 번도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에서 법적 책임을 인정하면 강제징용과 원폭피해 등 다른 과거사 문제에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해서다.
이번 ‘12·28합의’가 반쪽짜리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합의엔 ‘도의적’이란 말이 빠졌지만, ‘법적’이란 말도 없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벌써 “법적 배상을 뜻하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29일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이번 합의문은 과거 담화를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재단을 만들고 10억엔을 내놓는 방안도 미봉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10억엔에 위안부 문제를 털고 가겠다는 일본 정부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1995년에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설립했다. 17억엔을 투입해 위로금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이 기금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2007년 해산됐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번 합의에도 ‘핵심 쟁점’에 대해 피해자와 일본 정부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
두 나라 사법부도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법적 분쟁은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에 대해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1년 “해석상 분쟁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는 정부에 ‘부작위 위헌’을 선고했다.
이듬해 대법원은 더 나아가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실질적으로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지만 재판을 통한 배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일본 정부나 기업의 ‘자발적 배상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위안부 문제’ 외교적 합의했다지만… 日 ‘법적’ 책임 비켜간 반쪽짜리 협상
입력 2015-12-29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