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8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급습한 29일 아침 서울 노원구 중계로 백사마을 주택가 곳곳이 빙판길로 변했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탓에 바람은 더욱 차가웠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이곳은 재개발 바람이 불던 1960년대 용산 동대문 청량리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며 전체 1000가구 중 600여 가구가 연탄을 땐다.
이날 한국전력공사(한전) 서울본부 직원 80명이 백사마을을 찾아왔다. 조를 나눠 주민들에게 연탄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한전은 전남 나주로의 본사 이전 1주년을 기념해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과 국민일보가 진행 중인 ‘따뜻한 대한민국, 사랑의 연탄 300만장 보내기’에 지난 1일부터 동참하고 있다. 지역본부별로 연탄배달 봉사에 나서는 것은 물론, 한전 홈페이지를 통해 연탄 나눔을 독려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먼저 개당 3.6㎏짜리 연탄 60여장을 창고에서 꺼내 리어카에 옮겨 실었다. 동네길이 좁아 트럭 대신 리어카나 지게로 연탄을 옮겨야 했다. 목적지는 양완희(74) 할머니 집. 여섯 명이 달라붙어 리어카를 밀었다. 리어카 앞에 등장한 굽이진 길의 경사는 족히 45도는 돼보였다.
“기운 내셔야 해요. 조금만 더요.” 연탄은행 신미애 국장의 독려에 리어카를 미는 봉사자들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있는 힘껏 리어카를 밀어 겨우겨우 언덕 끝에 올랐다.
“날이 추워 연탄이 더 많이 필요한데 때마침 연탄을 가져다 줘서 고마워요.” 컴컴한 집안에 홀로 앉아 있던 양 할머니는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다른 봉사자들은 각자 지게에 연탄 3∼6개씩을 지고 날랐다. 봉사자들은 연탄을 되도록 낮고 넓게 쌓았다. 행여 연탄을 높이 쌓으면 떨어지거나 이를 꺼내다 노인들이 부상을 입을까 해서다.
권모(82) 할머니는 “가족이 없으니 가끔씩 찾아오는 봉사자들이 자식같이 반갑다”고 말했다. 봉사자들도 그 마음에 공감했다. 이호평 한전 서울본부장은 “작은 도움이지만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약 두 시간 만에 여덟 가정에 1200장의 연탄이 모두 배달됐다. 박모(79)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 연명하고 있어서 연탄을 구입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된다”면서 “도움을 주는 이웃들 덕분에 연탄이 채워졌으니 올겨울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과 연탄은행은 30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연탄 기증식을 갖는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사랑의 연탄 나눔을 통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이 한파 걱정 없이 훈훈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탄 나누기 줄이어, 후원 방법 다양
연탄은행은 국내 연탄사용 가구를 총 16만8000곳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외부로부터 연탄을 지원받아야 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약 10만 가구다. 연탄사용 가구는 동절기에 보통 하루 3∼4장을 땐다.
연탄은행과 국민일보는 지난달부터 300만장을 목표로 ‘사랑의 연탄’을 모으고 있다. 캠페인에는 현재까지 아이돌 그룹 EXO의 찬열 등 개인 200여명과 서울 소망교회(김지철 목사), 서울 세화여고, 한국의학연구소 등 교회 및 단체 30여 곳이 참여했다. 후원받아 나눈 연탄은 약 200만장이다. 허기복 목사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후원으로 연탄은행을 운영하기 때문에 후원자의 동참이 큰 힘이 된다”며 “사랑의 연탄 모으기 캠페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함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원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적게는 연탄 한 장 값인 500원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연탄가스배출기 교체를 위한 후원은 가구당 5만원, 연탄보일러 교체 후원은 가구당 20만원부터다.
현장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할 수 있다. 단 자원봉사는 봉사희망 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에 신청해야 한다. 연탄 투입 시점 등 연탄 수혜자의 여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탄은행은 후원·자원봉사 참가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과 봉사활동 확인서, 연탄천사증 등을 발행해준다. 후원 및 자원봉사 참여 문의는 홈페이지(babsang.or.kr)나 전화(1577-9044)로 가능하다. 후원계좌는 기업은행 002-934-4933(예금주: 연탄은행)이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의 연탄은행’] 韓電 이웃 사랑, 혹한 속 언 가슴 녹였다
입력 2015-12-29 18:15 수정 2015-12-29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