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한테 자가용이 무어냐고 물으면 농담 삼아 “BMW”라고 답하곤 한다. 고급 외제차를 일컫는 게 아니라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ing)’의 첫 글자를 따 조합한 단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난 여전히 걷는 게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즐겁다.
매일 아침 8시면 경기도 의정부 자택을 나와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1호선 가능역에서 전철로 환승한다. 자가용이 없는 게 아닌데도 이렇듯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지하철을 타면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볼 수 있지만 차를 몰면 운전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게 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사용하고 싶은 게 요즘 내 마음이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에 있는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본부 사무실에 도착하면 오전 9시30분쯤 된다. 24㎡(7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엔 싱크대 책상 책장 테이블 등이 구비돼 있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이 운동본부의 ‘대표’인 동시에 ‘급사(給仕)’이기도 하다. 커피를 타 마시고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때론 외부일정을 소화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5년 전 셋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첫째와 둘째는 각각의 자리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특히 둘째 아들은 나처럼 신학을 공부한 뒤 미국 LA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를 대물림하거나 과거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으로 일한 ‘권력’을 이용해 아들이 좀 더 쉬운 길을 가도록 도울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옳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감독회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고 자부한다. 감리교단 최고 지도자로서 연세대나 CBS의 재단이사, 기감 서부연회 감독 등을 겸임할 수 있었지만 감독회장만 맡았다. 나머지 권한은 전부 다른 이들에게 양보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김 목사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자주 들었던 이유는 이런 이력 때문이다.
감리교단은 최근 몇 년간 감독회장 선거가 수차례 혼탁하게 치러지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나는 모든 문제 해결은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손에 거머쥔 것들을 내려놓아야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갈등을 극복하고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돌아보면 다사다난한 인생이었다. 천애고아나 다름없던 청소년기를 거쳐 고학생으로 고군분투하며 신학을 공부했고 목회자가 된 뒤에는 수많은 교회를 섬기며 큰 기쁨을 느꼈다.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엄청난 슬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목회자 유가족을 돕고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운동을 벌이는 지금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아내나 자식들은 일을 손에서 놓고 쉴 것을 권하기도 하지만 나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나는 내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것이다.
수많은 역경을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었다.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뒤엔 항상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만약 어떤 어려움도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믿음이 희미해지면서 옳지 않은 길을 걸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경을 통해 얻은 열매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 마음속에 차오르는 건 주님을 향한 고마움이다. 내게 주님은 인생의 은인이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내가 수확한 ‘역경의 열매’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진호 <14·끝> 수많은 고난 뒤에 남은 건 ‘주님에 대한 감사함’
입력 2015-12-30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