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전통적이지 않다. 지극히 현대적이다. 이것은 과거가 과거 그대로가 아니라 현재적 기억의 편집에 의해 경험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다. 역사로서의 전통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하는 학자로는 영국의 문화이론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역시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바움이 있다. 윌리엄스는 ‘선별된 전통(Selective Tradi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의 수많은 대상들 중에서 후대에 의해 가려진 것들만이 전통으로 남게 됐다고 했다. 홉스바움은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전통의 발명(Invention of Tradition)’을 주장했다.
이들의 이론은 통념과는 배치되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가 전통으로 간주하는 것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저들의 논리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지정된 무형문화재라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기예 중에서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선별된 전통’에 해당되며,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같은 것은 사실 아무런 역사적 근거 없이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발명된 전통’으로 보아야 한다.
선별된 것이든 발명된 것이든 간에 근대국가와 현대사회가 전통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민을 통합하고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날 우리가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후대의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발명되고 짜깁기된 것이라는 점에서 생각처럼 그렇게 순수하거나 신성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근대사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이 처음 생겨난 것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구한말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나라는 잃을지라도 문화를 지키면 우리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른바 ‘국수(國粹)’를 지키기 위한 ‘문화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문화민족주의는 우리말과 역사, 민족종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일본 식민 지배자들도 조선의 전통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그들의 관심은 주로 조선 지배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들에 의해 조선의 전통이 비로소 근대적인 학문의 대상이 되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광복 이후 전통에 관심을 많이 보인 것은 박정희정권이었다. 문화재보호법과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이 역시 정권의 정당성 확보 일환이었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정권과 대립했던 민주화운동 세력들도 나름대로 민족 전통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권위주의 정권이 주로 귀족 지배층의 문화를 강조한 반면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족문화의 정통성이 민중문화에 있다고 보고, 이른바 민중문화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니까 1970, 80년대의 전통에 대한 관심은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운동 세력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라는 성격을 배경으로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전통은 정치적 함의를 띠기보다 경제적인 대상이 되었다. 문화산업이 강조되면서 전통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콘텐츠라는 측면에서 주목받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지난 100여년간의 근대사만 보더라도 전통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선별되고 발명되며 짜깁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전통은 계승되거나 보존되는 것이라기보다 편집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그렇게 본다면 중요한 것은 누가, 왜, 어떤 관점에서 전통을 편집할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전통의 편집권이 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전통을 권력의 문제로 보게 만든다.
최범 디자인평론가
[청사초롱-최범] 전통의 편집
입력 2015-12-29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