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고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협상하러 일본 외교장관이 온다는 사실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지난 24일 ‘뉴스’를 통해 알았다. 협상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려고 2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에서 TV 앞에 앉아 다시 ‘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협상은 불과 1시간10분 만에 끝났다. 사전에 이미 다 얘기가 돼 있었다는 뜻이다. TV 자막으로 ‘한·일 위안부 담판 최종 타결’ ‘아베, 마음으로부터 사죄’ ‘일본 정부 10억엔 기금 출연’ ‘정부, 소녀상 관련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 노력’ 등의 속보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이런 자막이 나왔다. ‘위안부 문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이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는 ‘완전히 끝났다’는 뜻이다.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굳이 넣은 것은 이 합의는 뒤집을 수 없다고 강조하기 위해서다. 일본 측이 요구한 문구일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거였는데, 하도 말이 많아서 다시 하는 거니까 이건 뒤집을 생각 말라”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
이런 합의를 하면서 정부는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수십년 외쳐온 사죄와 배상 요구가 어떻게 종결되는지 알 수 있었다. 강일출(88) 할머니는 “우리에게 묻지도 않았다”며 언성을 높였다. 나눔의 집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정부가 회담 전에 할머니들에게 (협상 결과가) 어떤 수준이면 수용할 수 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나눔의 집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이들은 “전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이 함께 “최종 타결”이라고 밝힌 회담 결과에는 할머니들이 원하던 내용은 없었다. 일본이 전범국으로서 사죄하는 내용이 빠졌고, 법적 배상에 대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이옥순(88) 할머니는 “우리가 꼭 사죄를 받아야 합니다. 공식사죄를 받고 법적배상을 꼭 받아야겠어요”라면서 “우리도 명예를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 결과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뤄낸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옥순 할머니는 “우리가 다 죽어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할머니들이 다 죽어도 후대가 있어요. 우리 역사가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무례했다. 10년 넘게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해온 분들이다. “정부가 일본과 이렇게 합의하려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적어도 이 할머니들에게는 물어봤어야 한다.
홍석호 사회부 기자 will@kmib.co.kr
[현장기자-홍석호] ‘위안부 협상’ TV로 구경한 피해 할머니들
입력 2015-12-28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