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25년간 이어져온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공표했다. 더 이상 국가 간 갈등의 여지가 없다는, 외교사(史)상 전례가 드물 정도로 강력한 선언이다. 일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이후 양국 간 이뤄진 역사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갈등의 불씨가 여전하다. 영구적인 화해를 선언한 것 자체가 ‘결단’인 동시에 ‘모험’이다. 향후 일본 우익 인사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왜곡 발언이나 도발을 해올 경우 우리 정부가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5년 단임제인 우리 정부 성격상 차기 정부에서까지 과거사 관련 논의를 막겠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당장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이 근래 들어 달라진 것도 한 예다.
양국은 이를 우려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명시한 합의안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합의안 자체가 일본의 사죄,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 외에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향후 서로 합의 파기를 주장할 수 있는 분쟁의 씨앗을 남겼다는 부정적 평가도 나온다.
사죄 주체의 격(格)은 높였지만 형식과 내용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과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28일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일본 언론에 보도됐던 아베 총리의 사과 편지는 없던 일이 됐고, 강제 동원됐음을 의미하는 문구도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사죄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일본의 추가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도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좁힐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사안일 뿐 아니라 국제적인 전쟁범죄인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합의안이 국제적 규범에 대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적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그동안 아베 정부가 취해 왔던 입장에서 봤을 때는 큰 폭의 진전이 있었다. 외교사에서 100대 0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 낙제점은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이런 논란을 감수한 채 한·일 양국은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고 새 시대를 나아갈 것을 선언했다. 길게는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짧게는 1990년 위안부 문제 공론화 이후 이어졌던 두 국가 간, 국민 간 진정한 화해가 정말 이뤄질까. 역사의 주사위가 던져졌다.
강준구 기자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불가역적’ 공표… 되돌릴 수 없어 향후 日 우익 발언 대처도 힘들어
입력 2015-12-28 21:56 수정 2015-12-29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