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과거사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이 28일 양국 정부 간에 타결된 데는 ‘연내 해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결정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양국 정부의 협상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문제를 해결하라. 그렇지 않으면 영구미제사건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정부를 독려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협상에 어려움을 맞을 때마다 ‘할머니들 생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4월부터 진행된 한·일 정부 국장급 협의가 일본 정부의 ‘책임’ 문제 등 쟁점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돌파구가 됐던 셈이다. 일부 호의적이지 않은 여론 등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에도 양국 정부가 연내 최종 타결에 이르게 된 것도 ‘연내 해결’에 대한 대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 광복절 경축사 외에 일본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고령의 피해자들을 언급하면서 “지금이 문제 해결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해 왔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위안부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해야 한다’는 점을 꼽아왔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이번 결단은 한·일 간 해결 방안이 이런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줄곧 교류가 막혀 있던 대일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외교적 필요성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일 양자 및 한·미·일 3각 안보 공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경제협력 중요성 등이 십분 고려됐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의 역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핵심축인 한·일이 과거사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미·일 협력구도가 느슨해지자 미국은 양국의 화해를 강력히 요구해 왔다.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의 배경에 이런 미국의 바람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2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협상이 급물살을 탄 것은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기소됐던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었다. 한·일 관계 악재였던 이 사안이 해소되면서 일본 내 분위기는 급반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또 이른바 ‘이병기-야치’ 라인 가동 가능성도 보도했다. 아베 총리의 외교책사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보국장과 주일대사를 지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물밑 채널도 협상 타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물론 협상의 위기도 있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방한 소식에 이어 확인되지 않은 일본 언론의 ‘여론몰이성’ 보도가 계속 나오면서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던 것. 급기야 우리 정부는 일본 측에 “저의가 무엇이냐”며 강력 비판하기도 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朴 대통령 의지가 결정적
입력 2015-12-28 21:29 수정 2015-12-29 0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