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정부 ‘소녀상 문제’ 개입 시사… 日요구 수용 파장

입력 2015-12-29 04:07
강일출 할머니(오른쪽)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8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 결과를 알리는 뉴스 속보를 본 뒤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28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관련 단체와 협의해 적절히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녀상 철거를 요구해온 일본 측의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것으로 해석돼 후폭풍이 예상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소녀상은 민간 차원의 문제로, 정부 간 협상 대상이 아니라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일본은 이번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소녀상 문제를 집요하게 부각시켰다. 지난해 4월부터 12차례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도 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는 일본의 끈질긴 요구사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26일 “위안부 협상에 진전이 있으면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남산 추모공원으로 이전하는 방향으로 시민단체를 설득할 전망”이라고 보도해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당시 외교부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시민단체가 설치한 소녀상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회담 후 한·일 양국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기시다 외무상은 공동기자회견 직후 일본 기자들과 만나 “(대사관 앞 소녀상이)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런 발언에 대해 “기대감을 표명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일본 정부의 우려 표명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해보겠다는 것이지 이전 약속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이 사안이 갖고 있는 민감성은 정부로서도 잘 알고 있는 만큼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외교적 수사일 뿐 실제 이전은 없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소녀상 문제가 양국 위안부 협상 결과물에 포함된 것 자체만으로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당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부가) 무슨 권리로 검토를 하느냐”며 강력 반발했다. 소녀상 설치를 위한 시민 모금을 주도했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이전에 반대하고 있고, 국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협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1000회를 맞았던 2011년 12월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설치됐다. 이후 국내에 24곳, 미국 9곳, 일본 1곳에 세워져 일본의 반인륜 범죄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일본은 “소녀상은 대사관의 보호 등을 규정한 빈 협약에 저촉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를 요구해 왔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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