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실 속 판타지] 집·가족… 판타지 끄집어내 고달픈 현실 위로

입력 2015-12-30 04:00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현실적인' 이야기에 공감한다. 지나치게 허황되거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며 비판받거나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대중문화에서 현실성은 그래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 대신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은 다양해졌다. 현실과 판타지가 적절히 버무려졌을 때 대중은 관심과 지지를 보낸다. 대중문화 속에서 현실과 판타지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예능, 드라마, 만화를 통해 살펴봤다.

현대인에게 집과 가족은 이중적인 존재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가족은 각자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고 가족은 때로 지겨우리만치 현실적인 관계다. 그렇다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집과 가족은 팍팍한 삶의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해 있는 게 집, 그리고 가족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방송에서 집과 가족은 주요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고달픈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카메라가 현실로 뛰어들었고 현실 속 판타지를 끄집어냈다. 미혼 연예인들이 가상 결혼을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상 가족이 만들어지고, 연예인들이 직접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 프로그램은 집밥의 매력을 띄웠고 셀프 인테리어가 TV 속으로 들어왔다.

집과 가족을 모두 보여주는 방송은 ‘육아 예능’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와 ‘오 마이 베이비’(SBS)는 연예인 아빠(또는 엄마), 그들의 자녀, 그들이 사는 집까지 낱낱이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온전히 그들의 현실은 아니다. 개그맨 이휘재가 매일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고 가수 김태우가 가정적인 아버지 역할을 감당하기엔 바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육아 예능을 보며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연예인들에게도 육아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걸 확인하면서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평범한 20, 30대 젊은 부모가 감당하기 힘든 고가의 장난감, 옷, 넓은 집이라는 ‘판타지’는 대리만족을 주기도 한다.

가상 체험 예능에도 현실과 판타지가 혼재돼 있다. 꾸준히 인기 있는 가상 체험은 ‘신혼 체험’ ‘가족 체험’ ‘농촌 체험’ 등이다. 연예인과 홀로 사는 노인이 가족이 되는 KBS ‘인간의 조건-집으로’는 따뜻한 감성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 놓은 방송이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현실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육아 예능의 경우 지나치게 비싼 육아용품이 등장하면 시청자들은 ‘다른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체험 예능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우리 결혼했어요’는 2008년 첫 방송 이후 7년 동안 ‘현실성’ 논란을 수차례 겪었다. 미혼 연예인의 가짜 결혼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보지만 등장인물의 열애설은 용납되지 않는다. 진짜 애인이 있는데도 가상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속았다’는 싸늘한 반응을 보여 왔다. 한 예능 PD는 “현실과 판타지의 줄타기에서 살짝만 삐끗해도 시청자들의 질타가 날아든다”고 말했다.

집밥과 집도 주요 소재가 됐다. tvN ‘집밥 백선생’은 많은 이에게 집에서 해 먹는 요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노홍철의 복귀작 ‘내 방의 품격’은 셀프 인테리어를 가르쳐준다. 작은 셋방이어도 아늑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주면 위로와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드라마, 특히 주말극에서 집과 가족은 단골 메뉴다. KBS ‘부탁해요 엄마’, MBC ‘엄마’, tvN ‘응답하라 1988’은 모두 가족애를 다룬다. SBS ‘애인있어요’도 결국 부부의 사랑이 스토리를 이어가는 핵심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