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B양의 어머니는 지난 2일 딸의 일기장을 보다 깜짝 놀랐다. 일기장에는 ‘방과후학교 바둑교실 강사 A씨가 야한 사진을 보여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민 끝에 B양의 어머니는 7일 이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렸다.
교감과 담임교사는 곧바로 학교폭력 신고센터 117에 신고하고 강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서울시교육청과 관할 교육지원청에도 보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학교 측은 바둑교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개별 면담하고 전교생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자 숨어 있던 추가 피해자가 드러났다. C양은 지난달 말 방과후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실에 혼자 남았을 때 A씨가 노트북으로 나체 사진을 보여줬다고 진술했다. A씨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강의한 경력을 바탕으로 이 초등학교에서 여러 해에 걸쳐 방과후학교 바둑교실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방과후학교 강사의 ‘자질 관리’가 겉돌고 있다. 올 4월 현재 전국 초·중·고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이용하는 학생은 407만명이다.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는 13만명에 이른다. 지난 9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강사가 과자에 수면제를 섞어 제자에게 먹인 뒤 강제 추행했다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문턱이 낮고, 선발과정도 까다롭지 않아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방과후학교 운영은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마련한 ‘방과후학교 길라잡이’에 근거한다. 그런데 뚜렷한 경력이 없어도 강사로 지원할 수 있다. 해당 분야 대학졸업자·전공 대학생, 기술·기능 보유자, 국내 체류 외국유학생,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자문)를 거쳐 프로그램을 운영할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 등의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학교장이 강사의 성범죄 경력과 아동학대 관련 범죄 전력을 요구하지만 개별 강사를 대상으로 꼼꼼하게 따지기는 어렵다.
여기에다 외부업체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위탁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맞춰 일일이 강사와 계약을 체결하느니 외부에 일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2013년 14.6%였던 업체위탁 프로그램 비중은 올해 23.2%까지 늘었다.
교육부는 업체위탁을 권장하지 않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인에게 프로그램을 위탁하거나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이 있다”며 “민간업체 소속 강사는 업체가 직접 인증·관리를 하다보니 교육 당국이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방과후학교 강사의 자질이 문제가 되자 서울교육청은 지난 10월 1일부터 이들을 교직원으로 분류하고, 성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사안의 경중과 무관하게 학교장이 지역교육청과 서울교육청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강사가 교직원에 포함되지 않아 지역교육청이 ‘중대 사안’으로 분류한 문제만 서울교육청까지 보고됐었다. 김선희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교육 당국이 행정편의적 사후 조치보다 예방 차원의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단독] 이 변태 강사가… 수년간 ‘방과후 수업’
입력 2015-12-28 17:41 수정 2015-12-28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