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던 새벽송… 신나던 노방전도… 뜨겁던 문학의 밤… “아련한 그 시절… 여전한 그분 사랑”

입력 2015-12-28 20:49
서울 도봉구 노해로길 쌍문제일교회 현재 모습.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1988년 열린 서울 쌍문제일교회 여름성경학교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찬양을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동네 골목을 돌며 노방전도를 하는 모습. 교인들이 교회 인근 우이동 솔밭에서 야외예배를 드리고 있다. 세 사진 모두 1980년대 후반 사진이다. 쌍문제일교회 제공
그때는 주일예배 때 밴드가 반주하지 않았다. 피아노도 아니고 주로 풍금을 사용했다. 교인들은 가사가 적힌 괘도를 보며 찬양을 불렀다. 손 글씨로 가사를 적은 전지를 여러 장 엮어 괘도걸이에 걸어 사용했다. A4 크기의 투명한 OHP 필름에 가사를 적고 환등기로 영사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서울 쌍문제일교회(김경환 목사) 김주현(41·회사원) 집사가 기억하는 1988년 당시 예배 모습이다.

tvN이 방송 중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인기를 모으면서 복고열풍이 거세다. 응팔은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88년 무렵의 서울 쌍문동 주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25일 응팔의 배경이 된 동네를 찾았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자 쌍문제일교회가 나왔다.

김 집사는 중학교 3학년이던 88년에도 이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27년 전 기억을 더듬던 김 집사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새벽송의 추억이었다.

“성탄절 전날 교인들은 어김없이 교회에 모였어요. 예배를 드린 뒤 자정이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찬양을 불렀죠. 아기예수님이 나신 기쁜 소식을 전한 거죠. 그러면 집에 있던 교인들이 우리가 가져간 자루에 과자나 과일을 담아줬어요.”

마지막으로 새벽송을 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따져보는 듯 잠시 말을 멈췄던 김 집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젠가부터 대부분 교회가 새벽송을 하지 않더라구요. 시끄럽다는 주민 항의가 많기 때문인데 그래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당시엔 ‘문학의 밤’이란 행사도 열렸다. 중·고등부 학생과 청년들은 마을 주민을 교회로 초청해 연극·율동·노래·태권도시범 등을 선보였다. “당시 교회에서 문학의 밤 입장권을 팔았는데 수익금으로 음식을 만들어 주민에게 대접하거나 불우이웃을 도왔어요.”

기타를 둘러메고 교회 앞에서 노방전도를 했던 기억도 아련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찬양을 부르며 “예수 믿으세요”를 외쳤다. 김 집사는 “노방전도를 하다 다른 교회 전도팀을 만나 서로 격려했던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시민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김 집사의 목소리도 조금씩 빨라졌다. 그는 여름과 겨울방학이 되면 성경학교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밤이 되면 모닥불을 켜놓고 캠프파이어를 했던 게 생각나요. 성경암송대회나 성경 빨리 찾기 게임도 했었어요. 응팔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마니또’라는 게임을 하면서 티 나지 않게 남을 도왔던 기억도 나네요.”

쌍문제일교회는 김경환 목사와 서영자 사모가 86년 개척했다. 서 사모는 “개척할 때만 해도 교회 주변에 논밭이 많았고 소를 키우는 집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논밭이었던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차가운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이웃 간에 벽이 생겼다. 개척 초기만 해도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고 어울리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왔지만 요즘엔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던 김 집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우리 사회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이웃이나 정(情)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