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기부금 집계 참가해 보니] 꼬마들 편지·돼지저금통 통째로…자선냄비 꽉 채운 작은 사랑들

입력 2015-12-28 18:39
대한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우체국에서 서울 시내 110여개 자선냄비에 들어온 기부금을 모아 계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올겨울에도 어김없이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거리 곳곳에 등장했다. 1000만원, 500만원 등 고액 후원자들도 적지 않지만 자선냄비를 따뜻하게 만드는 건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의 작은 정성과 손길이다.

28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소회의실은 지폐와 동전을 세는 계수기 돌아가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서울 시내 110여개 자선냄비에 모인 기부금을 모아 집계하는 계수작업이 한창이었다. 자루에 봉인된 채 이곳으로 옮겨온 기부금을 자원봉사자 20여명이 일일이 지폐를 펴고 분류하고 세느라 분주했다. 이날도 익명으로 기부된 10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나왔다.

지난 24일 계수작업 때도 성인 남자용으로 보이는 5돈짜리 금반지도 나왔다. 메모는 없었다. 자원봉사자 전현희(62·여)씨는 “누군가 끼고 다니던 반지를 넣은 것 같다”며 “이렇게 이름도 얼굴도 빛도 없이 동참하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삐뚤빼뚤 손으로 눌러쓴 종이봉투도 쏟아졌다. 한신어린이집 아이들이 청량리역 앞 자선냄비에 직접 넣은 것이다. 맞춤법은 틀리지만, 돕고 싶어 하는 마음과 정성은 가득했다. “저가 도아드리게요.(도와드릴게요) 힘네세요(힘내세요).” “저번 주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착한 일 해서 모은 돈이에요. 이걸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아프시면 병원에서 치요(치료)도 받으새(세)요.” 봉투에는 꼬깃꼬깃 접힌 1000원 지폐부터 10원짜리 동전까지 작은 정성들이 들어있었다.

‘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라고 적은 돼지저금통도 있었다. 빨간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자 동전뿐 아니라 반듯하게 접힌 1만원과 5만원 지폐도 나왔다.

이름 없는 돈이 많지만 종종 사연을 담은 메모도 나온다. 사연마다 요즘 세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원봉사자 원경순(59·여)씨는 사연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대부분 넉넉해서 나누는 게 아니라 빠듯하지만 마음으로 내놓은 경우가 많아서다.

“남편이 정년이 다 돼서 3개월 쉬다 다시 일하게 돼 감사하다며 공백 기간에 모은 돈 50만원을 넣은 아내가 있었어요. 그분들도 힘들었을 텐데, 마음이 참 고맙죠.”

동전 계수는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한다. 100원짜리 동전 2500개를 한 자루에 넣으면 13.56㎏. 제법 무게가 나가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세계 국가의 지폐와 동전도 나온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심지어 어느 나라 돈인지 알아보기 힘든 것도 제법 된다. 외화는 열흘에 한 번씩 외환은행에 들고 가서 한꺼번에 한화로 바꾼다.

휴학생 전혜원(24·여)씨는 “누구누구의 할머니라고 소개하시면서 ‘할머니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당부하신 분, ‘학생 신분으로 모았다’면서 15만5000원을 넣어주신 분도 있었다”면서 “믿고 좋은 데 써 주길 기대하며 내주신 마음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은 31일까지 진행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