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팀 김민재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본인과 연관된 명의도용사건 때문에 몇 가지 사실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수사기관의 전화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수사관이 명의도용이란 단어를 쓰게 되면 더욱 예민해지면서 귀 기울이게 된다. 이런 심리상태에다 수사기관이라는 신뢰성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보이스피싱에 당하고 만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부터 6차례 217건의 ‘그놈·그녀 목소리’를 보이스피싱체험관(phishing-keeper.fss.or.kr)에 공개한 이후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사례 5개를 28일 발표했다. 남자 사기범 1위는 검찰을 사칭해 농협직원에게 전화를 건 경우, 여자 사기범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를 사칭한 사례였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어나자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체험관을 열어 실제 사기범들의 목소리를 공개했다. 개그콘서트 ‘황해’에서처럼 어색한 한국말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로 듣자마자 사기임을 알아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엔 유창한 한국말로 피해자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놈 목소리’가 횡행하면서 재밌는 뒷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국민들이 체험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사례를 보면 사기범은 농협직원에게 농협통장이 도용됐다고 얘기하다 신고자가 “내가 농협직원이다”라고 하자 “그래 너 잘났다”며 끊어버렸다. 씨티캐피탈 직원 강현철을 사칭한 사기범은 하필 단속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눌한 말투에 수사관은 “그렇게 해서 밥 먹고 살겠어. 좀 프로답게 해야지”라며 “어디서 건 거냐, 수수료는 얼마나 받는 거냐”며 되레 질문을 퍼부었다. 사기범은 “어떻게 잘 아느냐”며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상담했다.
한편 금감원은 ‘그놈 목소리’ 공개로 금융사기 순피해액이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연간 2300억원의 피해예방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앞으로도 신규 신고·접수된 ‘그놈 목소리’를 공개할 예정이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비즈카페] 올해 ‘그놈’ 목소리 1위는 누구
입력 2015-12-29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