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안부 합의, 일본의 이행과 양국 국민 설득이 관건

입력 2015-12-28 18:05
한·일 양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에 전격 합의한 것을 환영한다. 두 나라 사이 해묵은 난제에 극적으로 해법을 찾은 것은 한·일 외교사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재집권한 이후 정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함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일관성 있게 요구한 데 대해 아베 총리가 전향적으로 대응해 온 것은 다행이다. 두 나라는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이 저물기 전에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내년부터 다방면의 협력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공표한 합의 사항을 들여다보면 우리 입장에서 상당히 많은 것을 얻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안부 동원의 책임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표현한 것은 1993년 ‘고노 담화’에서 일본군이 동원과 관리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아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재집권 이후 고노 담화 수정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단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는 아베 총리가 개인이 아닌 총리 자격으로 사죄한 것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더욱 명백히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양국이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취한 것은 총리가 편지 형식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토록 한다는 이른바 ‘사사에 안’보다 더 진전된 방식이라 하겠다.

이행 조치로 우리나라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치유 사업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이 정부 예산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키로 한 것도 기억과 다짐이라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접근이다. 출연기금 규모가 ‘아시아여성평화기금’보다 커졌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해자·피해자가 함께 협력적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합의사항을 종합하면 미흡하지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합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일본이 합의 정신을 제대로 이어나갈지, 피해자들과 양국 국민이 합의 사항을 수용할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일본 각료나 정치인들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발뺌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일본 입장을 고려한 ‘창조적 대안’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 논쟁을 종식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각료나 정치인들의 언행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와 같은 ‘망언’을 일삼을 경우 이번 합의는 별 의미가 없다.

더 나아가 일본 정부는 우익세력을 다독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일본은 최종 합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위안부 문제를 재론하지 말 것을 약속하고,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전적으로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호감을 사기 위해 하기 싫은 합의를 억지로 한 것으로 비치면 일본만 손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도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피해자 할머니들 입장에선 당연히 이번 합의에 아쉬운 점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협상과정과 합의내용을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관련 시민단체들도 정부를 맹목적으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등 미래지향적으로 투쟁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도 진솔한 자세로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