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호 <13> 홀사모 섬기기·미자립교회 돕기… ‘은퇴 없는’ 사역

입력 2015-12-29 18:04
김진호 목사(앞줄 왼쪽 다섯 번째)가 2009년 4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은퇴식을 가진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목회자 유가족을 돕고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운동을 벌이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들 운동을 왜 시작했는지 설명하려면 2009년 4월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나는 서울 도봉구 도봉교회에서 은퇴예배를 드리고 강대상에서 내려왔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은퇴식을 열어주기도 했다. 이때는 나의 목회자 인생이 새로운 길로 접어든 시점이었다.

은퇴한 뒤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가장 소홀히 한 분야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목회자 유가족을 돌보는 일과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운동이었다. 이들 두 운동이 나의 마지막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목회자 유가족 문제는 한국교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은퇴하고 4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날 목회자 남편을 잃은 홀사모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들은 나를 붙잡고 고충을 털어놨다.

“목사님,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남들처럼 자식 교육을 시키려면 돈이 필요한데 너무 곤궁합니다. 저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결국 나는 2010년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본부를 설립하고 홀사모 돕기에 나섰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한 오피스텔 건물에 24㎡(7평) 남짓한 사무실도 마련했다. 그해 12월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이 일에 더 애착을 갖게 됐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이들을 섬기기로 결심했다.

운동본부는 매년 2월과 8월, 홀사모 자녀 중 도움이 필요한 학생 30여명을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대학생에게는 200만원, 고등학생에게는 100만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홀사모 자녀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문제는 재원이었다. 장학금을 꾸준히 지급하려면 1년에 5000만∼6000만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전국 감리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운동본부에 십시일반 후원금을 기탁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목회자 유가족을 돕는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운동본부에는 매년 후원금과 함께 따뜻한 사연도 답지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도 오랫동안 매달 5만원씩 기부한 70대 교인, 암 수술을 받은 뒤 받은 보험금 1000만원을 내놓은 50대 남성, 단체 설립 때부터 지난해 소천할 때까지 매년 100만원씩 기탁한 고 나원용 목사….

장학금 전달식에서 장학금을 받고 기뻐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 행사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누군가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초대해 여는 ‘신바람목회세미나’도 내가 은퇴 이후 추진한 사역 중 하나다. 세미나는 매년 3월과 10월 미자립교회 목회자 70∼80명을 초청해 이들에게 부흥 노하우 등을 전하는 행사다. 세미나를 여는 이유는 미자립교회 문제가 한국교회의 가장 시급한 숙제라고 판단해서다.

한국교회의 60∼70%는 미자립교회다. 이들 교회 목회자들은 패배의식과 열등감에 젖어 있다. 나는 세미나를 통해 이들에게 도전과 격려의 메시지라도 전하고 싶었다.

한국교회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려면 큰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매달 5만∼10만원씩 후원금을 전달하는 일로는 부족하다.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듯 500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라면 미자립교회에 평신도 가정을 파송해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