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문을 곱씹으면서 읽어보았다. 재판부는 A4용지 47쪽 분량의 판결문에 16쪽 분량의 설명자료까지 내놓았다. 마치 소논문 같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토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의 정○○와 만나느라 사고수습(업무수행)을 소홀히 했고 두 사람은 단순히 업무상 아는 사이 이상의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재판부는 보았다. 재판부는 비록 허위 사실(사생활)일지라도 공적 존재(대통령)의 경우 곧바로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며, 사인(私人) 박근혜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에 해당하긴 해도 비방 목적은 없었다고 봤다.
단지 이 때문에 가토 판결문을 챙겨본 것은 아니다. 그만한 이유들이 따로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토 칼럼이 미확인 소문을 근거로 한 국내 언론인 칼럼을 재인용한 점과 기자 개인의 온라인용 내지 블로그성 칼럼이란 점에 주목했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소문과 의혹에 대해 언론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 판결이란 판단에서다.
우선 소문에 관한 칼럼의 재인용 부분이다. 가토는 조선일보 칼럼(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문장별 또는 단락별로 분해(分解)하면서 증권가 등의 소문과 의견(평가)을 부연하는 방식으로 칼럼을 작성했다. 재판부는 가토가 상당 분량 인용한 조선일보 칼럼도 소문 내용의 진위를 면밀히 확인하고 작성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토는 증권가의 말을 인용, ‘소문이 남녀관계’라고 명시적으로 적시했고 제목에서도 의도적으로 남녀관계를 부각시켰다는 취지다. 가토가 추가 인용한 근거로 제시한 타지 보도들과 인터넷 게시글들은 소문 내용과 연관성이 떨어지고 누구에게 언제 어떤 내용의 소문을 어떻게 확인했는지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남의 칼럼 베끼면서 자기의 의견과 평가를 부연한 ‘짜깁기’ 칼럼 정도로 해석했다.
그래도 비방목적이 없어 무죄라면 기사 표절과 어뷰징(동일기사 반복 전송)이 만연한 오늘의 온라인 언론 풍토에서 비방 목적의 존부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특히 재판부가 가토의 칼럼 ‘시리즈’에 주목한 점이 눈에 띈다. 매월 1회꼴로 쓴 총 8편 중 한 편이 문제의 칼럼인 점으로 미뤄볼 때 사인 박근혜를 비방할 목적을 갖고 특별히 남녀관계를 들춰낸 일회성 기사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런 잣대들이라면 청와대가 앞으로 온라인상에서 발원한 대통령과 측근 인물 관련 소문과 의혹 보도에 대해 일관되게 ‘법대로 해결’을 고수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특히 대통령과 그 참모진의 사생활 아닌 업무수행 또는 정책결정 관련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 당시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방문 설정(設定) 의혹에 관한 국민일보 인터넷판 보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당시 전반적으로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의 소명(疏明)보도였지만 청와대 측은 소문의 내용을 불가피하게 적시한 것에 방점을 두고 항의해 왔다. 온라인 속성을 이해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었다.
온라인은 방사포 같은 전파성을 가졌지만 수정과 반론이 매우 쉽기 때문에 기성언론과는 대응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 만일 온라인상에서 소문과 억측이 나돌고 이를 보도할 움직임이 포착되면 정확한 사실을 신속히 알리고 반론을 요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일 것이다. 한 번 인쇄 또는 방송되면 되돌릴 수 없는 기성언론과는 확연히 다르다.
언론 역시 비방 목적이 없으면 무죄라고 윤리와 책임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온라인 속성을 살려 반론권을 적극 보장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
[돋을새김-정재호] 가토 판결이 던진 시사점
입력 2015-12-28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