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화려했던 경력을 뒤로하고 쓸쓸히 잊혀져 버린 여배우들을 거론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메그 라이언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등에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연기해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군림했던 라이언은 이제는 흘러간 물이다. 배우 데니스 퀘이드의 아내로서 러셀 크로와 공공연히 염문을 뿌림으로써 편안한 이웃집 여인 같은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
두 번째는 지나 데이비스다. 그는 수전 서랜던과 공연한 페미니스트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로 널리 알려졌지만 88년 ‘우연한 방문객(Accidental Tourist)’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경력도 90년대 중반부터 무너져 내렸다. 당시 남편이던 레니 할린 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 ‘컷 스로트 아일랜드’와 ‘롱 키스 굿나잇(이상 1996)’이 형편없는 졸작이란 평을 받으면서 흥행에도 참패한 게 그 계기였다.
이들과는 경우가 다르나 잊혀지기로는 마찬가지인 여배우들도 있다. 피비 케이츠와 르네 젤위거. 케이츠는 1982년 ‘파라다이스’라는 영화로 데뷔한 뒤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는 94년 31살의 한창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아이들 양육에 전념한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사랑스러운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뒤 2004년 ‘콜드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젤위거는 그러나 그 이후 곧 인기가 시들기 시작했다. 결국 5년간의 은둔에 들어갔지만 처지가 비슷한 다른 여배우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가 그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키아누 리브스와 공연한 스릴러 ‘완전한 진실(The Whole Truth)’이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을 뿐 아니라 2016년에는 ‘브리짓 존스’ 3편인 ‘브리짓 존스의 아기(Bridget Jones’s Baby)’도 나오리라는 소식이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51) 못다 핀 여배우들
입력 2015-12-28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