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마술사’ 관객 입맛 사로잡나… 판타지·멜로·액션·스릴 ‘퓨전 한정식’ 대령이요∼

입력 2015-12-30 04:08
30일 개봉된 ‘조선마술사’에서 청나라 왕자에게 시집가는 청명공주를 연기하는 고아라(왼쪽)와 고아 출신의 마술사 환희 역을 맡은 유승호. 두 사람은 화려한 마술쇼가 펼쳐지는 가운데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 위더스필름 제공
마술무대 ‘물랑루’ 모습. 위더스필름 제공
화려한 마술쇼의 판타지, 조선시대 마술사와 공주의 러브스토리, 암투와 반전이 숨어있는 액션스릴러. 다양한 재료로 밥상은 차려졌다. 요리사는 한국 멜로 영화의 흐름을 바꾼 ‘번지점프를 하다’(2000), 한국형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혈의 누’(2005), 사극의 에로티시즘을 완성한 ‘후궁: 제왕의 첩’(2012)의 김대승 감독이다. 30일 개봉된 ‘조선마술사’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가득한 퓨전 한정식 같다. 구색은 그럴듯한데 관객의 입맛에는 잘 맞을까.

◇얼른쇠와 의순공주에서 모티브=고아 출신의 마술사 환희(유승호)는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얼른쇠’가 모델이다. 천민신분의 마술사가 펼쳐 보인 당시 마술은 단순했지만 서민층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흰 공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빨간 공으로 바꾸고, 손수건을 비둘기로 만들고, 누워 있는 사람 위로 천장에서 작두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마술이 에피타이저로 즐길만하다.

마술쇼가 펼쳐지는 물랑루의 스타 환희는 청나라 왕자에게 시집가던 중 잠깐 이곳에 들른 청명공주(고아라)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다. 청명공주는 가짜 공주다. 1650년 공주 대신 청나라에 시집간 이개윤의 딸 ‘의순(義順)공주’(대의에 순종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눈속임의 마술사와 가짜 공주가 벌이는 운명적인 사랑이 구미를 당긴다.

◇유승호와 고아라의 눈빛 호흡=제대 후 첫 복귀작인 유승호는 촬영 전부터 마술과 액션을 연마했다. 최근 열린 시사회에서 그는 “마술사 특유의 행동,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시대를 떠나 20대 남녀 커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옆에만 있어도 웃음이 나고, 손도 잡고 싶고 그런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사극에 첫 도전한 고아라는 청명공주 역할에 대해 “소녀감성과 함께 성숙한 여성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며 “알콩달콩하고 말랑말랑한 장면도 재밌었다”고 했다. 잘 생기고 귀여운 두 배우는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아는 환상의 커플연기를 과시했다. 하지만 애틋함이 절절하지 않고 연애방식도 고전적이어서 젊은 관객들이 사극 멜로의 성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다.

◇이경영과 곽도원 그리고 박철민=음식의 진가는 양념에 있다. 영화가 다소 지루해지거나 밋밋해질 무렵 조연들의 양념연기가 빛을 발한다. 한국영화는 그가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이경영은 청명의 호위무사 역을 맡았다. 딸을 지키는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목숨 건 싸움을 벌이는 액션이 돋보인다.

인상파 배우 곽도원은 과거의 원한으로 환희를 노리는 청나라 최고의 마술사 역을 맡아 잔인한 캐릭터로 영화에 스릴을 불어넣는다.

애드리브에 능통한 박철민은 환희의 매니저로 적재적소에서 특유의 웃음을 선사한다. 환희의 어릴 적 의누이로 침술과 언변, 미모까지 겸비한 눈먼 기생을 연기하는 조윤희의 변신도 극을 맛깔스럽게 한다.

◇진짜 마술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주요 무대인 물랑루는 7억원을 들여 80일 이상 걸려 지었다. 캐릭터에 맞는 복장을 위해서는 4개월간 2000벌이 넘는 의상을 제작했다. 남녀 주인공이 강 위로 줄을 타고 가는 장면 등은 CG(컴퓨터그래픽)로 살렸다. 이런 장치들은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로 진수성찬을 즐긴 후 후식의 포만감을 안겨주는 요소다.

다양한 장르가 버무려진 영화의 주제에 대해 김 감독은 “나를 변화시키고 변화된 내가 사랑하는 여자까지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마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주제도 살리고 감동과 여운까지 준다면 좋으련만 중간에 긴박감이 떨어지고 느슨해지는 것은 아쉽다. 입맛이 까다로운 요즘 관객들의 기호에 어필할 수 있을까. 12세 관람가. 122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