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기금의 형태와 규모를 놓고도 한·일 양국은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가 아닌 ‘도의적 책임’과 ‘인도주의적 지원’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은 27일 일본 정부가 예산을 통해 새 위안부 피해자 지원 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과 배상 의무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국 측에 이해를 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일본 정부가 내놓을 새 기금은 앞서 일본이 1995년 정부 지원금과 민간 모금을 합쳐 설립했던 ‘아시아여성기금’과 비슷한 성격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이 기금으로 한국을 비롯해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5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 및 속죄의 의미로 보상금과 의료·복지 지원금을 각각 1인당 200만엔(약 1945만원), 300만엔(약 2918만원)씩 지급했다. 보상금은 일본인들의 기부금으로, 의료·복지 지원금은 정부 예산으로 지급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회피 논란이 빚어졌고, 한국에서도 2002년 기준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피해자 207명 중 61명만 지원을 받는 데 그쳤다. 기금은 2007년 해산됐다.
일본 정부는 이 기금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상금을 일본 정부 예산으로 지급함으로써 문제를 타결짓겠다는 방침이다. 아사히신문은 또 일본 정부 내에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참여하는 공동기금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국 정부를 참여시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타결’을 담보하기 위한 의도라고 신문은 덧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이 일본군과 정부가 자행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타기’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위안부 피해자 및 지원단체의 의견과 국민 정서가 중요한 위안부 문제의 특성상 피해자들이 줄곧 요구해온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위안부 피해 지원 기금 카드만으로는 이 문제의 최종 타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기금 규모에 대한 양측의 이견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여성기금 후속사업의 약 10년분 예산에 해당하는 1억엔(약 9억7000만원)을 검토하고 있지만 한국 측이 일본에 10억엔(약 97억원) 이상의 기부를 요구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고 교도통신 등이 전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측이 기금 규모로 20억엔(약 195억원)을 요구해 일본이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측은 양국 교섭이 타결되면 내년 3월 31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동문서를 발표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국을 끌어들여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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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7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