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크 디미티스(Nunc dimittis·이제 종을 평안히 가게 하소서)!”
서울 중구 장충단로 경동교회를 16년간 이끌어온 박종화 목사는 27일 2부 예배 설교 말미 이렇게 인사했다. 예루살렘 사람 시므온이 성전에서 마리아와 요셉, 아기 예수를 만난 뒤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임을 깨닫고(눅 2:29) 드렸던 라틴어 기도다.
“이제 저는 떠납니다. 저는 떠나지만 우리 주 그리스도는 남아서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실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곧바로 은퇴예배가 30분간 이어졌다. 내빈소개나 떠들썩한 부대 행사는 하나도 없었다. 본당을 가득 메운 교인들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을 배경으로 박 목사의 과거 사진과 영상을 조용히 지켜봤다. 장로 2명의 송사가 끝나고, 2부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 ‘축복’이 울려 퍼졌다. 1999년 12월 5일 취임예배 때 연주됐던 곡이다. 박 목사는 “이렇게 축복받으며 취임할 수 있구나, 이 축복을 교인과 나눠야겠다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 마음을 지켜왔다”며 “오늘 다시 이 찬송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떠나면서 교인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에겐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을 썩지 않게 해야 하는 예언자적 사명이 있다”며 “하지만 소금이 녹아져서 스며들지 않으면 짠 맛을 내지도, 썩는 것을 막지도 못 하니 스스로 희생하는 소금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은 ‘빛’이 되어야 한다”며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됨과 동시에 추운 겨울을 녹이는 볕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목사는 아내 김현숙 사모와 예배 후 일일이 교인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내년 4월 임기 만료 시점보다 앞당겨 치러진 은퇴예배는 시종일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됐다. 당회는 그를 원로목사로 추대했다.
그는 1945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한신대와 연세대 신대원을 거쳐 독일 튀빙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76년부터 6년간 독일 뷔르템베르크교회 총회 등에서 협동선교사로 지냈다. 한신대 교수 재직 시절 다양한 저술 활동을 펼치며 학문적 성과를 냈다.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기장 총무로 6년간 활동했고, 91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으로 지내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 운동에 기여했다.
그가 경동교회에서 보여준 목회 스타일은 ‘오케스트라 목회’로 요약된다. “목회자는 지휘자”이며 “성경말씀을 음악대본으로 삼아 저마다 악기를 연주하는 교인들의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목회 철학이었다.
목회 현장에서 다방면으로 에큐메니컬 정신을 실천했다. 한·독 에큐메니컬 연합 예배,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과의 교환 예배 등을 드렸다. 사회봉사를 강조하며 2000년 봄부터 외국인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한 ‘선한 이웃 클리닉’도 열었다. 타종교와의 소통에도 앞장섰다.
박 목사는 교회력에 따른 예배를 강조하며 ‘절기별 성서일과’에 따라 설교했다. 은퇴를 기념해 그동안 드렸던 설교집 ‘주일마다 나누는 하늘양식’을 펴냈다. 그의 후임으로는 채수일 전 한신대 총장이 내년 1월 말 부임한다.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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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7 21:27 수정 2015-12-27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