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폭 낀 기업사냥꾼, 돈 한푼 없이 알짜기업 ‘꿀꺽’

입력 2015-12-27 17:41 수정 2015-12-27 21:09

‘가짜를 찾아내는 진짜 기업!’ 2012년까지만 해도 위조지폐 감별기를 만드는 코스닥 상장회사 S사의 미래는 밝기만 했다. 세계적으로 위폐 제조가 잦아지면서 위폐 감별기술이 주목받던 시기였다. 50여개국과 통하는 글로벌 영업망까지 갖춘 S사를 두고 업계는 “성장스토리가 확보됐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S사는 범서방파 계열 폭력조직을 위시한 ‘기업사냥꾼’들이 경영에 손을 대며 망가지기 시작했다. 김태촌의 양아들로 알려진 충장OB파 행동대장 김모(42·구속기소)씨, 그와 함께 상장사 인수를 주도하던 최모(47·구속기소)씨 등이 장본인이다. 이들은 2012년 11월 29일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한 특수목적법인(SPC)을 내세워 당시 S사 대표와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맺었다. 262억원에 당시 대표의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받는 내용이었다.

정작 그만한 자금력이 없었던 이들이 믿는 구석은 명동 사채업자였다. 일단 자금집행 업무를 장악하면 회사 소유 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S사의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던 2013년 1월 11일 S사 본사 근처의 한 은행 지점에서 복잡한 자금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모두 갈아 치운 이날 저녁, 최씨 등은 이 은행에서 S사가 소유한 234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건네받았다. 이들은 이 CD를 79억원, 90억원, 30억원어치로 쪼갰다. 이 자리에서 3명의 사채업자에게 각각 담보로 제공해 70억원, 90억원, 40억원을 빌렸다. 아무런 자본력 없이도 최고 기술력의 상장사 하나를 고스란히 넘겨받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이었다.

2012년 6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던 S사는 그 뒤로 판이하게 달라졌다. 새 경영진은 보유자산 절반 이상을 부동산 매입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쉽게 하는 방식으로 정관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신임 대주주와 자금 출처를 불안해하던 주주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경영권 양도 전에 5470원이던 주가는 2013년 3월 2500원대로 반 토막이 났다.

상장폐지까지 불과 7개월이 걸렸다. S사는 횡령·배임 고소, 주주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등 복잡한 소송과 함께 2013년 340억원대 적자로 전환했다. 새 경영진은 사채이자를 갚으려고 다시 횡령범죄를 저질렀다. 자산관리시스템 등을 허위로 구입한 뒤 대금을 돌려받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최씨는 S사 외에도 무자본 M&A 사례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었다. 2012년 3월 증권선물위원회가 무자본 M&A로 19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또 다른 S사의 관계자 7명을 검찰에 고발했을 때 최씨가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한글과컴퓨터 설립자가 이 회사를 인수한 뒤 자신의 기업을 우회 상장할 계획이라며 허위로 BW 투자를 종용했다 사기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5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오랜 도피생활을 했던 최씨에겐 특경가법상 사기 등 총 8건의 기소중지(지명수배) 처분이 걸려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최씨를 검거해 지난 10일 구속 기소했다. 업무상 보관하던 S사의 CD를 개인채무 담보 명목으로 쓴 혐의(특경가법상 횡령)였다. 기업사냥꾼의 폐해를 토로하던 여러 상장폐지 회사 소액주주들은 최씨의 무자본 M&A가 어떤 법적 처분을 받을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