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나 보던 얘기가 아니다. 노후를 걱정하는 부모세대는 재산을 물려주면 자식이 ‘변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자식들은 ‘잠재적 불효자’ 취급과 재산을 쥐고만 있는 부모에게 서운할 수밖에 없다.
가사소송 전문가들은 이런 갈등을 피하려면 ‘효도계약서’라 불리는 각서를 미리 만들라고 조언한다. 부모 봉양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저물면서 부모-자식 간 증여에도 ‘계약’이 필요해진 것이다. 국회에는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을 경우 증여재산을 환수하는 ‘불효자식방지법’까지 발의돼 있다.
◇‘효도계약서’ 작성법과 효력은=효도계약서는 민법상 조건부 증여를 차용한 부모와 자식 간 계약의 한 형태다. 양식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각서 정도의 요건만 갖추면 된다. 하지만 내용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부양의 정도, 부동산 등 증여하는 재산의 목록을 상세하게 열거해야 한다. 계약상 부양의무를 위반했을 때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증여재산을 반환한다는 조항은 반드시 넣어야 한다.
효도계약서에 명시한 부양의무는 민법 974조에 규정된 직계혈족 간 일반적 부양의무 수준을 넘어선다. 법원은 “민법상 부양의무가 있음에도 부모와 자식 간에 ‘충실한 부양의무’를 명시한 계약을 작성했다는 것은 일반적 부양을 넘어서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담긴 부양을 이행한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충실한 부양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증여를 ‘없던 일’로 돌릴 수 있는 기준도 달라진다. 일반 증여는 재산 소유권이 이미 자식에게 넘어간 경우 취소할 수 없다. 민법이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반면 효도계약서를 작성했다면 계약서에 명시된 증여재산에 대해 반환을 주장할 수 있다. 법무법인 세올 이현곤 변호사는 27일 “일반 증여로는 자식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 부모가 법적으로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효도계약서를 작성해 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효도계약서에는 부모와 자식의 도장날인이 필요하다. 따로 공증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계약서를 썼더라도 자식이 증여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면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불효자식방지법’은 국회 계류 중=국회에는 부모가 부양의무를 저버린 자식에게 증여재산을 쉽게 돌려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지난 9월 발의한 민법 개정안과 형법 개정안을 합쳐 ‘불효자식방지법’이라 부른다.
개정안은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도 해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미 증여한 재산도 전부 회수할 수 있다. 형법 개정안에는 존속폭행죄에서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했다. 자식이 부모를 폭행한 경우 부모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민 의원은 “자녀를 처벌하기 위한 게 아니라 부모의 권리를 높여줘 불효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형법 개정안 역시 법원의 중재 과정에서 부모의 협상력을 향상시키기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발의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미 증여한 재산의 환수 범위나 ‘처벌 만능주의’ 논쟁이 예상되지만 아직 상임위 차원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민 의원 측은 “노인단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의원실로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온다”며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수 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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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계약서 어떻게 작성해야 하나… ‘부양의 정도·증여 재산’ 구체적 명시 필요
입력 2015-12-27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