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그룹이 신규 순환출자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27일 밝혔다. 삼성그룹은 내년 3월 1일까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4.7% 가운데 2.6%(500만주)를 매각해야 한다. 삼성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현대차, 롯데 등 다른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공정위 “삼성 신규 순환출자금지법 위반”=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지난 7월 17일 합병으로 삼성전자-삼성SDI를 거쳐 다시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합병으로 순환출자 고리 수는 10개에서 7개로 줄었지만 7개 가운데 삼성SDI 중심의 3개 고리는 신규 순환출자금지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순환출자란 같은 대기업 소속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이 출자한 다른 기업이 다시 A기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A기업을 소유한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정부는 경제 민주화 입법과제 중 하나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에 속하는 대기업이 새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강화하는 것을 금지했다.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다면 6개월 안에 해소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과징금 부과, 의결권 행사 금지 등의 제재가 부과된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이 법이 실제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삼성그룹이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 3개를 아예 없애거나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중 2.6%인 주식 500만주를 처분하는 방식으로 합병에 따른 추가 출자분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은 7300억원 상당(24일 종가 기준)의 삼성물산 2.6% 지분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삼성이 기한 내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공정위는 주식 처분명령 등 시정조치와 함께 법 위반과 관련한 주식 취득액의 1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재계 영향은?=삼성은 공정위 결정을 수용키로 했다. 그러나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처분하기에는 공정위가 정한 시한이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점을 들어 처분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할 예정이다.
삼성의 순환출자 정리 작업이 시작되면서 다른 대기업들도 3세 승계, 부실 계열사 구조조정 등의 과정에서 순환출자 문제를 풀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0월 말 현재 순환출자 고리가 있는 대기업은 삼성, 현대차, 롯데 등 모두 8곳으로 고리 수는 94개다. 삼성의 경우 삼성전기 등 3개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8.79%, 2조4240억원 상당)을 다 처분하면 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없앨 수 있다. 삼성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정리해도 총수 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합친 삼성물산의 내부 지분율은 31.44%에 이른다. 우호주주인 KCC(8.97%)와 자사주(11.01%)를 합친 지분율은 51.42%로 절반이 넘어 삼성물산 경영권과 이를 통한 그룹 지배에는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다. 롯데 역시 순환출자를 해소해도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는다.
순환출자를 해소해도 총수 일가 위주의 대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법으로 금지되는 순환출자나 상호출자 외에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력을 확보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있는데, 우호적 비계열사나 위장 계열사를 이용해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짜면 법망을 피해가면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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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 물산 지분 2.6% 팔아 순환출자 해소해야”… 공정위 “신규순환출자 금지 위반”
입력 2015-12-27 19:20 수정 2015-12-27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