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호 <12> ‘아들 잃은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명령

입력 2015-12-28 18:25 수정 2015-12-28 20:42
2010년 12월 뇌농양으로 세상을 떠난 김진호 목사의 셋째 아들 태영씨의 모습.

하나님은 수많은 고난과 아픔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겪는 고통 중에는 이겨내기 힘든 고통도 적지 않다. 특히 자식을 앞세운 참척(慘慽)의 비통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내게도 그런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

셋째 아들 태영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때는 2010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들은 갑자기 두통을 호소했다. 몸에서 열이 났다. 동네 병원을 찾았더니 감기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다. 미혼이었던 당시 아들의 나이는 서른여덟. 태영이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2008년부터 작은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염려 돼 우리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아들의 병세는 나아지질 않았다. 20일 넘게 우리 부부는 아들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주며 열이 내려가길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태영이는 내가 보는 앞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될 때는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명은 뇌가 세균에 감염된 뇌농양이었다. 12월 11일, 급하게 수술을 받았지만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아들은 숨을 거뒀다. 생떼 같던 자식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기간 내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내가 “그만 좀 우시라”고 다독일 정도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겪은 삶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지금도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얼굴이 보고 싶다.

아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학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여유가 생기면 아버지의 사역도 돕겠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니 조의금 중 1500만원이 남았는데 생전에 아들이 했던 이 말이 떠올랐다. 남은 조의금을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다.

1500만원 중 500만원은 도봉교회 소속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500만원은 조립식 예배당을 짓고 있는 충북의 보은사도교회로, 나머지 500만원은 중국 선교를 하다가 세상을 떠난 한 선교사 가족에게 보냈다. 내가 전달했다기보다는 나의 막내아들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나의 ‘목회자 인생’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여러 교회를 차례로 섬기며 매번 부흥의 열매를 수확했다. 감리교단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아들이 떠나기 한 해 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은퇴식까지 치렀다. 그런 내게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목회자로서의 내 사역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였다. 아픔을 지닌 자들을 돌보고 위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내가 더 겸허해지길 바라는 주님의 마음이었다.

나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에 목회자유가족돕기운동본부를 만들었다. 남편과 사별한 홀사모들, 그리고 이들의 자녀를 돕는 기구다.

운동본부를 설립하기 전에 시작한 또 다른 사역도 있다. 전국 미자립교회를 돕는 운동이다. 2010년부터 나는 매년 3월과 10월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해 ‘신바람목회세미나’를 열고 있다. 세미나에는 교회 부흥에 성공한 목회자 등이 강사로 나서 부흥 비법과 전도법을 전한다. 세미나가 열릴 때면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목회자 수십 명이 행사장을 찾는다.

이런 세미나를 여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를 개척한 뒤 자립을 하려고 발버둥치다가 영적으로 탈진해버리는 목사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 됐으면 좋겠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