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 순환출자 판단 계기로 대기업 지배구조 돌아보길

입력 2015-12-27 17:46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해 지난 9월 통합 삼성물산으로 새 출발시키는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공정위는 27일 두 회사 합병으로 삼성그룹 순환출자 고리가 10개에서 7개로 감소했지만 이 중 3개 고리는 오히려 순환출자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바깥에 있던 옛 삼성물산 또는 제일모직이 합병 후 고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 회사 주식을 갖고 있던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보유 지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를 해결하려면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지분 2.6%를 2월 말까지 해소해야 한다. 삼성은 일단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되 처분 시한 연장을 요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번 판단은 대기업들이 새로 순환출자를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것을 금지한 개정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7월 시행된 이후 처음 적용되는 사례다.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 개정법 취지다. 공정위는 합병과 같은 다양한 순환출자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뒤늦게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삼성으로서는 공정위 결정이 뜻밖이겠지만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가이드라인은 기업 승계나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재편, 부실 계열사 정리 등에도 적용되는 만큼 대기업 지배구조가 다시금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현재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곳은 삼성, 현대차, 롯데 등 8곳이다. 그 고리 수는 94개로, 최근 경영권 분쟁을 벌인 롯데(67개)가 가장 많다. 물론 기존 순환출자는 법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선진 지배구조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 신뢰를 얻는다. 법상 금지된 순환출자가 아니라 비계열사나 위장 계열사를 통한 우회 출자 고리로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이를 규제할 방안도 강구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