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주의 웨스트윈저플레인스보로리저널(WWPR) 학군은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 학군이다. 한국 중국 인도 등 아시아계가 65%를 차지하는 이 학군의 공립 고등학교는 단 2개에 불과하지만 뉴저지주에서 각각 전체 1위와 5위에 랭크될 만큼 성적이 최상위권이다. 두 고교가 최근 3년간 명문 MIT에 진학시킨 학생이 16명이다. 두 학교 모두 미 교육부가 학업성취도가 가장 뛰어난 학교에 수여하는 ‘블루리본’을 받았다. 각종 과학올림피아드 대회를 이 지역 학생들이 석권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 만점을 받은 학생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데이비드 아더홀드 교육감은 최근 학부모들에게 보낸 16쪽짜리 편지에서 ‘위기’를 선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지역 학생 9700명 중 지난 1년간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병원을 찾은 학생들이 120명에 이르고, 이 중 40명은 병원에 입원하는 등 ‘위기학생(student-at-risk)’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이다.
AP과목 등 고급과목을 듣고 있는 고교생 중 68%는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WWPR 교육청 조사에서 “학교 가기 싫어요”라거나, “초중고 12년을 이 학군에서 다니는 동안 배운 거라고는 ‘오로지 성적이, 단 1점이라도 높은 성적이 그 어떤 가치보다 더 인정받는 것’이다”라고 쓴 학생들도 있었다. 어떤 중학생은 “미적분 과목에서 A를 받았는데, A+를 받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아더홀드 교육감은 학생들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했다. 매월 1회 이상 숙제 없는 날을 정하고,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키로 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급수학을 배울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중학교 1학년부터 신청할 수 있도록 늦췄다. 아더홀드 교육감은 과도한 학습 부담을 줄이지 않으면 학생들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 들어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와 보스턴의 뉴턴 같은 명문 학군에서는 학업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학생들의 자살이 속출하면서 미 전역에 충격을 던졌다. WWPR 학군에서는 아직 자살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게 아더홀드 교육감의 판단이다.
그러나 학습부담 경감 방안은 백인 학부모들과 아시아계 학부모들 사이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고 NYT는 전했다. 대체로 백인 학부모들은 시험 부정행위와 성적집착 등이 팽배해 학교문화가 황폐해지고 있다며 교육감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초등학교 고급수학반의 90%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를 염려하며 반대했다.
제니퍼 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아시아계 학생들은 취업이나 인턴 기회를 잡으려고 해도 백인 학생들과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며 “그래서 아시아계 부모들은 자녀들이 또래들보다 탁월하게 잘해야 대등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위기 학생’ 속출 美명문학군 뉴저지주 WWPR “시험 폐지” 선언
입력 2015-12-27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