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는 뜻글자인 한자를 사용하여 의미를 함축할 수 있고, 고사와 연결함으로써 상징성을 높이고, 상황에 대한 명징한 성찰을 주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정치인들이 목에 힘주면서 사자성어를 쓰는 것은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연말에 교수들이 뽑는 사자성어는 집단지성이 작동하면서 그 원래의 묘미가 우러나온다.
올해의 사자성어 역시 핵심을 너무도 날카롭게 집어낸다. 2014년은 ‘사슴을 말이라 우긴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고, 2013년은 ‘잘못된 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올해 2015년은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로 인하여 세상에 길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설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리 무도해졌으랴? 무도하다는 뜻은? 원칙이 사라지고 변칙과 반칙이 판친다는 것, 상식이 사라지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횡행한다는 것, 정의가 지켜질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고 부정부패와 특혜가 난무한다는 것,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 사라지고 힘의 논리, 돈의 논리만 무성한 상황을 말한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그리 무도하지는 않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설마 이 모든 무도함의 책임을 군주에게만 물을 수 있느냐? 단 하나의 군주가 그리 힘을 가져서도 안 되고 더구나 잘못된 힘을 휘둘러서도 안 되는데, 우리 사회가 하나의 군주에 의해 뒤집히고 뒤로 갈 만큼 그렇게 허약한 체질인가? 설마, 설마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또 현실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기란 너무도 어렵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무도하게 몰아갈 수는 있다는 현실 말이다.
연말에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긴다. 공허함을 달래려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마음을 다잡으려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걸어본다. 여전히 마음은 허전하고 머리는 텅 비어가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는 갈망이 솟는다. 설마 2016년 연말의 사자성어는 지난 3년보다 더 악화되지는 않게 해야지 하며, 또 다짐을 한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혼용무도’의 2015년을 보내며
입력 2015-12-27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