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기 타결을 위해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에게 연내 방한을 지시하면서 “내가 책임진다”고 말했다고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도 28일로 합의된 한·일 장관 협의에서 “지혜를 짜내 전력(全力)으로 맞붙어 땀 흘릴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의 연내 타결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태도 변화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의 재판이 무죄로 결론 나고, 한일청구권협정의 무효를 주장한 헌법소원이 각하되는 등 외교 관계의 개선 분위기가 조성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미우리는 이 두 판결에 대한 추이를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 안에서 “일·한 융화 무드가 강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전진시킬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계속 주장해 온 것은 ‘최종적인 해결책’이었다. 최근까지 한국 정부의 입장이 타결 후에도 변할 것이라는 이른바 ‘골대 이동론’에 대한 우려가 컸던 아베 총리의 인식이 이 두 가지 판결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는 분석이다. 두 판결에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 일본 정부와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제의 해결이 불투명해 보이는 것은 핵심 쟁점에 대한 타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이뤄질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최대 쟁점은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여부다. 일본은 1965년 청구권협정을 통해 이 문제의 법적 해결이 종료됐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반면 우리 정부는 개인의 피해에 대한 배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일본 측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없이는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고,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요구해 왔다. 할머니들은 정부 측에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는 원칙을 지켜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오랫동안 기대와 실망을 수없이 반복해 온 할머니들은 이번 협상에서만큼은 일본 측의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이 이뤄지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 입장의 간극은 좀처럼 메워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최종 타결’에만 관심이 집중된 인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정부가 타결을 이루는 경우 제3자인 미국 정부가 성명을 냄으로써 최종 타결을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측에 성명 발표 준비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본 언론이 ‘우리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을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터무니없는 보도로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지 말라고 강력히 항의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외교장관 회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회담이 결렬됐을 경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언론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 역사인식에 대한 양국의 태도에서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두개의 판결을 무위로 돌리지 않고, 일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협상안을 과감히 제시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내가 책임진다”고 호기 있게 말한 아베 총리의 리더십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겠는가.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한반도포커스-이명찬] 새로운 시작의 마지막 기회
입력 2015-12-27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