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인기가 지속될까. 잠자던 민중미술의 대반격이 이뤄질까.’
주요 화랑의 내년 전시 계획으로 미뤄 원숭이해의 시장을 읽는 주요 관전 포인트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단색화를 국제무대에 데뷔시킨 주역인 국제갤러리는 여세를 몰아 강도 높은 해외 세일즈에 나선다. 반면 민중미술 전시의 양대 본산 가나아트센터와 학고재갤러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간판급 민중미술작가 전시를 열어 판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가나·학고재의 연합 반격=가나아트센터는 내년 1월 29일부터 3월 20일까지 민중미술전을 갖는다고 27일 밝혔다. ‘시대의 고뇌를 넘어, 다시 현장으로’라는 전시 제목부터가 단색화에 대한 반격의 성격임을 분명히 한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걸개그림으로 걸리기도 했던 민중미술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추상화 계열의 단색화가 현실을 도외시하는 엘리트 예술이라며 반기를 들고 나타난 미술운동이다. 전시는 고(故) 오윤을 비롯해 신학철·임옥상·황재형 등 5명 가운데 4명의 참여가 확정된 상태다. 민중미술 산파를 자처하며 1980년대 집중 후원했던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은 200여점의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가나에서 민중미술작가를 조명하는 그룹전을 갖는 것은 15년 만이다.
이 회장은 “해외에도 알린다는 취지인 만큼 신작보다 기존 대표작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영문과 중문 도록도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계열사인 서울옥션은 이달 초 경매에 오윤, 신학철, 이종구, 강요배 등 민중미술 계열로 ‘아트 포 라이프(삶을 위한 예술)’ 섹션을 구성해 분위기를 띄웠다.
학고재갤러리는 주재환 개인전 (3월2일∼4월 3일)에 이어 9월(날짜 미정) 신학철 개인전을 마련했다. 주재환 작가는 폐자재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유쾌하게 비트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아내의 병간호로 한동안 작품 활동을 못했던 신학철 작가도 10여년 만에 신작을 내놓는다. ‘모내기’ 작품으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그답게 세월호 집회를 형상화한 작품 등이 아주 강렬하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민중미술은 세계 현대미술사에서도 인정받은 미술사조”라면서 “단색화에 국한했던 한국미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3월 홍콩 아트바젤에는 윤석남, 강요배, 서용선 등 현실참여적 작가군의 작품을 들고 나간다.
◇국제갤러리, “그래도 단색화”=올해 국내외 전시를 통해 단색화 알리기에 적극적이었던 국제갤러리는 내년에도 단색화 세일즈 행보를 지속한다.
11월 말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가가 10억원을 넘기며 생존 작가로는 이우환, 정상화에 이어 세 번째로 ‘10억원 클럽’에 가입한 박서보 작가의 개인전이 영국 런던의 화이트큐브 갤러리(1월 15일∼3월 1일)에서 예정돼 있다. 박서보는 프랑스 파리 패로탱 갤러리(1월 9일∼2월 27일)에서 최명영, 서승원, 이승조 등과 그룹전도 갖는다.
작품 값이 한창 치솟고 있는 하종현 작가는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블럼앤포 갤러리의 동서양 미니멀리즘 작가 기획전에 초대됐다. 4월에는 같은 갤러리에서 단독 전시가 있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여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들의 전시를 내년 상반기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에서도 갖는다. 국내에서도 개인전 형식으로 단색화 열기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달 초 권영우 개인전이 끝났고, 내년에는 정창섭 개인전(2월 19일∼3월 27일)이 열린다.
시장에서는 민중미술 전시가 단색화에 대한 쏠림 현상을 해소해줄 걸로 기대하고 있다. 상업갤러리의 이 같은 행보에는 정상화, 박서보 등 일부 단색화 작가의 작품 값이 4년 사이 8∼10배 오르며 고갈되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귀환 준비하는 민중미술… 판 바뀔까
입력 2015-12-2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