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는 청소년기 내 자양분의 일부였다. 고교생이던 1970년대 후반 고향의 YMCA 여러 모임에 참여하면서 교과서 밖 세상을 보는 눈을 떴다. YMCA를 돕는 봉사 조직인 ‘와이즈멘’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YMCA와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최근 들려온 서울 YMCA의 내홍은 YMCA와 이어진 10대 때의 소중한 추억마저 퇴색시켰다.
서울 YMCA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감사가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해 30억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고 이사회는 감사를 제명하는 등 분란에 휩싸였다. 재단이 법인의 기본재산을 위법하게 투자한 것으로 확인되면 법인 승인이 취소될 수도 있을 정도로 위기라고 한다. 지난 23일에는 간부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가 단행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1조원이 넘는 서울 YMCA의 자산이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보도도 나왔다. 사태의 본질은 수십년간 장기 집권한 인사들의 이사회 독점과 불투명한 경영 때문이라는 직원들의 주장도 있다. 단순히 투자손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조직이 개혁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서울 YMCA가 어떤 곳인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112년 역사의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효시다. 연륜에 걸맞게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굵직한 몫을 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조직 활동가들 상당수가 체포·구금됐으며 1919년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도 적극 참가했다. 1920년대에는 물산장려운동, 농촌계몽운동을 펴는 등 일제 강점기 중요한 사회운동 세력이었다. 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시민논단’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현실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었고 ‘시민’이란 단어를 사회운동에 처음 도입하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역할을 했다. 1904년 유도를 시작으로 농구, 야구, 스케이트, 배구, 육상, 배드민턴 등 서양 스포츠를 최초로 들여온 기관이기도 하다.
진행 중인 수사가 마무리되면 옳고 그름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처가 크다. 이전의 위상과 명예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하필 성탄절 즈음에 들려온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의 잡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휘청거리는 서울YMCA
입력 2015-12-25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