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한] 문화로 인사합시다

입력 2015-12-25 17:40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명문가로 알려져 있는 ‘경주 최부자집’이 손님을 대하는 가훈이다. 예부터 우리 선조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내놓으며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50여년의 고도 성장기 동안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면서 ‘대접’의 미풍양속은 향응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왜곡된 ‘접대’로 변모되었다. ‘접대’ 행위가 기업의 목표 달성 도구로 활용되면서 법의 테두리를 넘어섰고 번번이 메인 뉴스를 장식했다. 일부 외국의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을 가리켜 ‘부패가 문화인 나라’라고 비꼰다고까지 하니 우리의 아름다운 ‘대접’ 전통이 현대에 와서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도 이런 여론을 감안해 기업규모별 접대비 한도를 정하고 실명제 도입을 검토하는 등 접대비 확대를 규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7년에는 기업 경영의 건전화 접대문화 활성화를 위해 ‘먹고 마시는 접대’에서 ‘보고 감동하는 접대’로 바꿔보자는 취지로 ‘문화접대비 제도’를 도입했다. 공연, 영화, 스포츠 관람, 전시회 초청 등 문화비로 지출한 접대비에 대해서는 사용 금액에 상관없이 추가로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 감동하는 접대를 확산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2016년 1월 1일부터는 문화접대비 적용 한도가 현행 10%에서 20%까지 확대되고, 문화접대비 지원 범위 또한 거래처 직원 등을 위해 직접 개최하는 공연·문화예술 행사비, 문화체육관광부에 후원을 받는 거래처 등의 체육문화 행사 지원금까지 확대된다.

정부의 문화 접대 정책이 확대되자 중소기업들도 문화 접대를 확대하고 있다. 차별화된 품격 있는 접대와 근로조건 개선, 세금까지 줄일 수 있는 1석3조의 효과가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15년 문화접대비 사용현황 조사’에 따르면 문화접대비를 이용하는 중소기업 중 90.8%가 문화접대비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직원의 직장생활 만족도와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2.5%는 문화접대비를 활용한 후 기업의 매출액까지 증가했다고 하니 문화접대비를 활용하는 중소기업들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문화접대비 제도 활성화를 위해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도 사실이다. 2007년 제도 도입 이후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쳐왔으나 여전히 제도의 인지도 측면에서 아쉬운 모습이 존재한다. 아직도 일부 기업가들은 접대란 술이나 골프가 최고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 전체 접대비 중 문화접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채 1%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들이 문화접대 제도를 인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홍보활동과 다양한 문화접대 방법을 개발해 보급하고 기업이 손쉽게 문화접대를 할 수 있도록 접대 성격에 맞는 문화 정보를 제공하는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또한 기업 경영자와 직원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부유함도 강력한 힘보다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예(禮)를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우리 전통의 문화를 아름답게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 문화를 키우는 것이고 세계적인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