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진호 <11> ‘빛을 발하라’… 한 말씀 붙들고 200번 넘게 설교

입력 2015-12-27 18:45
김진호 목사(뒷줄 왼쪽 다섯 번째)가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감독회장을 맡고 있던 2003년 기감 연회 감독들과 중국 선교여행을 갔을 때 찍은 단체사진.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으로 재임하며 주력한 분야 중 하나는 교단 차원에서 전도운동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감리교인은 150만명 수준이었다. 우리는 감리교회 성도를 2배로 늘리는 ‘300만 전도운동’을 전개했다. 허황된 슬로건처럼 보일 수 있지만 ‘300만 전도운동’이라는 문구에는 그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전도에 매달리자는 독려와 다짐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맹렬하게 전도에 매진한 결과 감독회장에 재임하는 2년 동안 감리교인은 이전보다 10만명 늘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이 밖에 나눔을 실천하는 ‘예수사랑실천운동’도 벌였다. 한국교회가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일에 소홀하다고 판단해 시작한 일이었다. 항상 정직한 크리스천이 되자는 차원의 의식개혁운동인 ‘정직운동’도 전개했다.

감독회장 재임 시절을 회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은 감독회장에 당선된 다음날 새벽 기도를 드리고 있던 내 모습이다. 나는 감독회장이라는 직함을 ‘명예’가 아닌 ‘사명’으로 여기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기도를 드리는데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길 바라신다.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우리는 주님 앞에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이 나를 감리교단 최고 지도자로 세운 다음날 내게 전한 말씀 역시 ‘빛을 발하라’는,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라는 명령이었다.

감독회장으로 일하며 어느 곳에 가든지 대부분의 설교 본문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로 시작하는 이사야 60장 1절이었다. 언젠가 감독회장으로 있으면서 이 본문을 바탕으로 설교한 횟수를 세어보니 204회나 됐다. 나처럼 특정 본문을 오랫동안 반복해 설교한 목회자는 드물 것이다.

같은 본문을 가지고 200번 넘게 설교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목회자 입장에서는 같은 본문을 통해 꾸준히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김진호 목사는 설교할 내용이 없어서 매번 같은 설교를 한다”는 비판을 들을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사야 60장 1절을 거듭 전한 이유는 이 말씀에 담긴 의미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다.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할 때마다 나는 기도부터 드리곤 했다. ‘오늘도 이 말씀이 은혜가 되게 해주십시오.’

신기한 것은 이렇게 기도를 드린 뒤 설교를 시작하면 매번 새로운 예화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은 “똑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은혜를 받습니다”고 말하곤 했다.

감독회장 퇴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한 성도가 내게 도자기 접시를 선물했는데 접시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興起發光’. 앞 두 글자 ‘興起(흥기)’는 일어나라는 뜻이요, 뒷글자인 ‘發光(발광)’은 빛을 발하라는 의미였다. 이사야 60장 1절을 인용한 문구였던 셈이다. 빛을 발하려면 우선 일어나야 한다. 누워 있거나 주저앉은 자는 결코 세상에 빛을 전할 수 없다. 나는 요즘 감리교회가 빛을 발하기는커녕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상태는 아닌지 우려할 때가 많다.

2004년 10월 나는 2년간의 감독회장 임기를 마쳤다. 도봉교회 담임목사로만 활동하며 다시 교인과 지역 사회를 섬기는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감독회장 재임 기간 전개한 ‘전도운동’ ‘예수사랑실천운동’ ‘정직운동’은 교회 차원에서 계속 이어나갔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