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환희(31)씨는 채식주의자다. 대학에 들어간 뒤 불규칙한 생활과 음주, 비뚤어진 식습관 탓에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두통과 근육통이 생겼고 강직성 척추염(자가면역 질환의 일종) 진단도 받았다. 평소 고기를 즐기던 그는 어느 채식 전문가의 “육식을 끊으라”는 조언에 채식을 시작했다.
이씨의 식단는 이렇다. 뿌리채소와 잎채소를 골고루 섞고 여기에 효소와 간장, 들깨가루를 곁들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다. 두부로 스테이크를 만들고, 치즈 대신 감자를 갈아 피자도 해 먹는다. 채소는 옥상 텃밭에서 직접 가꾼다. 평소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채식을 한 뒤로 식욕이 왕성해지고 아픈 곳도 사라졌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채식을 선택한 데는 자신만의 신념도 한몫했다. 소나 돼지를 방목하지 않고 가둬 기르는 데 거부감이 있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드는 화학조미료, 농약 등이 들어간 식품에 저항하고 싶었다. 아프면 병원에 갈 게 아니라 스스로 병을 고치는 방법을 궁리하기도 했다.
채식주의자는 흔히 채소만 먹고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만 최근 비건(Vegan·완전 채식), 락토(Lacto·유제품은 먹되 달걀 등은 피함), 오보(Ovo·달걀은 먹되 유제품은 피함), 폴로(Polo·붉은 살코기만 피함), 페스코(Pesco·유제품은 먹되 조류를 피함) 등으로 다양하게 나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고기를 가끔 먹는 이씨는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평소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함)으로 분류된다.
이씨 같은 ‘뉴밀(New-meal)족’이 늘고 있다. 채식은 물론 디톡스(Detox·체내에 축적된 독소 제거), 로푸드(Raw Food·익히지 않은 음식), 글루텐 프리(Gluten-free·글루텐을 뺀 음식), 슈가 프리(Sugar-free·설탕류를 뺀 음식) 등 새로운 식단과 조리법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살을 빼기 위해, 알레르기 탓에, 건강해지고 싶어서, 남들과 다른 생활을 위해 ‘뉴밀’을 선택한다. 글루텐을 뺀 파스타 등 뉴밀족을 겨냥한 식당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까다롭다’ ‘사회생활 어떻게 하느냐’ 등 차갑기만 하던 시선은 어느새 ‘친환경 생활’ ‘꾸준한 자기관리’ 등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미국의 한 패션잡지 기자가 2년간 설탕 없이 산 체험담을 담은 ‘나는 설탕 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펴내 인기를 끌었다. 뉴밀을 전파하는 TV 프로그램과 인터넷 게시물도 넘쳐난다. 그렇게 뉴밀족은 식탁을 뒤흔드는 새로운 흐름이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작정 새로운 식탁을 차리는 건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내 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근거 있는 정보로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경원 이대 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무수한 조리법과 식단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먹는 습관을 바꾸면 큰 부작용이 올 수 있다. 전문가에게 먼저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세환 김미나 심희정 김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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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웰빙 식단 열풍] 남다른 삼시세끼 ‘뉴밀족’ 밥상혁명 이끈다
입력 2015-12-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