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예산 충돌’이 도를 넘고 있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 편성을 두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법적 대응’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청년수당 문제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위법하다며 대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히자 서울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되받았다.
‘돈이 없어서’…벼랑 끝으로 가는 누리과정
누리과정을 둘러싼 다툼의 뿌리는 결국 ‘돈’이다. 시·도교육청은 정부가 상위법에 반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근거로 누리과정 예산을 떠넘긴다고 성토한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법적 책임이 분명한 데다 필요한 예산도 이미 충분히 지원했다는 논리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누리과정 예산은 의무지출 경비로 교육감이 반드시 편성해야 할 법적 의무”라고 거듭 강조했다.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전날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시·도교육청이 ‘적자 재정’을 호소하자 정부 주머니를 열 방법은 더 이상 없다고 배수진도 쳤다. 이 차관은 “교육부는 이미 지난 10월 23일 교육청별로 누리과정에 필요한 소요액을 전액 교부했고, 교육청의 어려운 재정 여건을 감안해 3조9000억원의 지방채 발행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악화의 원인을 시·도교육청의 씀씀이 탓이라고 본다. 매년 4조원을 웃도는 예산 불용액을 예로 들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인건비 같은 경우 육아휴직 등으로 쉬는 직원이 생길 것을 감안해 95% 수준만 편성하면 되는데 100%로 잡다보니 관행적인 불용액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방자치단체에 기대를 걸었다. 시·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차관은 “시·도교육청이 버틸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대법원 제소 등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면 재의요구 요청, 대법원 제소, 교부금 차감 등 법적·행정적·재정적 수단을 총동원해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철학이 달라서’…청년 없는 청년수당 논쟁
복지부도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무상공공산후조리원·무상교복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복지부와 지자체의 대립은 ‘돈을 쓰는 절차’에 대한 철학 차이에서 비롯됐다.
청년수당은 정기적 소득이 없는 만 19∼29세의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 공모와 심사를 거쳐 2∼6개월간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복지부는 서울시의회가 ‘협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청년수당 예산을, 성남시의회가 협의에 따라 ‘불수용’하기로 한 관련 예산을 편성한 것이 법에 어긋난다고 본다.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 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규정한 사회보장법상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협의제도’가 근거다. 추 실장도 “서울시와 성남시의 행위는 불법”이라고 공격했다.
정부는 다음 주 초 서울시에 예산안 재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고, 경기도에는 성남시에 예산안 재의를 요청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낼 계획이다. 두 지자체가 실제 집행을 하면 시정명령을 내리고 교부금을 깎는 방안과 함께 대법원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와 성남시는 정부가 지방자치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며 반발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년수당이 사회보장제도의 협의 대상인지 판단 중이며 개정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에 대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교육청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는 사이 아이들과 청년 등 미래의 주역들은 볼모로 잡혔다.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7개 시·도(서울·경기·세종·강원·전북·광주·전남), 특히 유치원 예산까지 전액 삭감한 서울·경기·광주·전남은 당장 내년 1월부터 어린이집 보육료와 유치원 교육비 지원이 끊길 처지다. 취업난과 생활고에 신음하던 청년들은 코앞까지 다가왔던 ‘희망’이 진흙탕싸움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광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전수민 민태원 기자
suminism@kmib.co.kr
네 탓 이어 ‘법적 다툼 치닫는 복지 예산’… 정부 vs 교육청·지자체 마지막 카드 꺼내
입력 2015-12-24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