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헤롯의 크리스마스 혹은 메시 크리스마스?

입력 2015-12-25 18:18

많은 성탄 카드의 그림에는 복음서 장면들이 나온다. 별을 따라가는 동방박사들, 목자들의 경배, 구유에 누운 아기. 그런데 만일 누군가로부터 받은 성탄 카드에 어린 아이들이 테러를 당하는 그림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사실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무고한 영아들의 죽음이었다.

성탄의 사회적인 배경은 헤롯 왕이 다스리던 유대이다. 헤롯 시대에는 크고 작은 공개 처형이 없던 날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어린 아이들을 무참히 학살해도 누구도 반항 할 수 없는 강력한 로마의 권력이 지배했다. 헤롯은 로마와 유대 사회 사이에서 고리 역할을 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이 되기에는 정통성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의 인정을 받으면서 왕이 됐다. 그리고 40년이나 통치했다.

헤롯은 또 로마가 유대교를 인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헤롯 덕분에 유대교는 로마제국에서 공적으로 인정받았고 유대인들은 황제 숭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 헤롯은 이렇게 해서라도 유대인들의 지지를 바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헤롯 왕이 유대 땅에 있던 이방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도 노력했기 때문이다.

헤롯은 인격 장애자였다. 그 이면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헤롯은 로마와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절 당할까봐 두려웠다. 헤롯이 유대인들을 위해 화려한 성전까지 지어주었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서였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러 왔다고 말하자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를 조사했다. 박사들에게는 아기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자신도 경배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박사들이 돌아가자 헤롯은 본색을 드러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아래 아이들은 모두 죽이라고 지시했다.

영아들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마을을 상상해보라. 아기들은 가정의 보물들이다.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소음이 아니다. 희망의 소리이다. 아기들이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갈 때 헤롯은 속으로 미소를 띠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노심초사 했다. 누구든 자기 주변에서 정치적인 욕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살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가 아니라 ‘메시(Messy)’ 크리스마스였다. 왜 크리스마스는 피로 얼룩졌는가. 헤롯은 왜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나. 헤롯은 예수님을 제대로 본 것이다. 예수의 탄생이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헤롯 왕에게 예수 출생은 대단히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보고는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헤롯은 자신의 권세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것만이 인생 목표였다. 그래서 잔혹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정복자들은 다 그랬다. 칭기즈칸과 스탈린, 히틀러 등은 헤롯처럼 피를 흘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위해 사람 죽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헤롯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자신을 세우려는 이기주의의 상징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메시 크리스마스로 바꿔버리는 행동이다. 우리는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우리 안에 예수를 죽이려는 무서운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헤롯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안의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을 잘못 봤다. 예수님은 헤롯 왕의 자리를 탐낸 분이 아니었다. 헤롯은 예수님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갈 존재로 봤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좌에 앉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헤롯 왕의 삶에 주인이 되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헤롯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헤롯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헤롯처럼 크리스마스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자신들이 가진 좋은 것을 빼앗기 위해 왔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기쁨과 자유, 평화를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주려고 오셨다. 그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크리스마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의로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직접 처리하고, 우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

이재훈(온누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