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백석우화’의 오동식 “쉬는 동안 버림받은 백석의 마음 알게됐죠”

입력 2015-12-24 19:02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 시인 백석을 연기해 극찬을 받고 있는 오동식이 24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극계에 연기 인생 최고의 캐릭터를 줄인 ‘인생캐’라는 말이 있다.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작품 속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는 뜻이어서 배우에겐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최고의 찬사다. 배우 오동식은 올해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백석우화-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에서 시인 백석(1912∼1996)을 연기하며 ‘인생캐’라는 말을 들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백석우화’는 남북한 모두에서 거부당한 천재시인 백석의 고단한 삶과 시를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냈다. 지난 8월 대전예술의전당 초연 이후 10월 12일∼11월 1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됐으며 호평이 이어지자 12월 23일부터 내년 1월 17일까지 앙코르 공연에 들어갔다.

24일 대학로에서 만난 오동식은 “지난 2년간 극단을 떠나 있었을 때 몇 달간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다. 극단에서 줄곧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쉬는 동안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남북한 어디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한 백석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변에서도 그동안 연기를 아르바이트처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작품을 보고 배우로서 재발견했다고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대학로에서 연출가 겸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2008년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했다. 이후 극단의 총괄기획 겸 게릴라극장 극장장으로 바쁘게 살아왔다. 배우로서는 2011∼2012년 주역으로 출연한 연극 ‘못생긴 남자’를 제외하곤 늘 조연으로 나왔다.

“원래 목표가 연출가여서 배우로서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주로 조연출을 하면서 배우의 빈 자리가 날 때 출연했죠.”

하지만 단체 생활을 하며 쉴 새 없이 작품을 올리는 연희단거리패에서 어느 순간 지쳐버렸다. 그는 “쉬면서 손진책, 윤광진 선생님 등의 조연출을 뜨문뜨문 하고 있을 때 TV에서 우연히 이윤택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부패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폐부를 콕콕 찔러서 다시 연락을 드렸다”면서 “올해 국립극단의 ‘문제적 인간, 연산’부터 극단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예전처럼 밀양이나 서울에서 공동생활을 하지는 않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극단으로 돌아온 그는 이번 작품을 연습하면서 처음 본 ‘이윤택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7월 첫 대본 리딩을 마친 뒤 이윤택은 백석의 삶에 아파하며 목을 놓아 울었다. 그는 “이 선생님은 인간적이고 따뜻한 동지애를 느끼게 하진 않지만. 강력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평소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생님의 눈물을 보며 백석 시인의 절망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인지 ‘백석우화’를 공연하는 내내 다른 작품과 달리 이상하게 불안과 부담이 컸다. 게다가 늑막염이 도지는 등 건강도 좋지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