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가 시즌 미국 동부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장시간 자동차 운전으로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아 가족과 휴가를 보낸 뒤 다시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미국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뉴스에서도 수십년간 익숙했던 풍경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그런 모습이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착각이었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NYT는 미국 보건·은퇴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미국민들의 현 거주지와 그들의 엄마집과의 거리를 조사한 결과 평균 29㎞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와이오밍주 등 산악지대여서 이농현상이 원래 강했던 미 중서부(70㎞)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이 30∼40㎞ 이하였다. 때문에 엄마집에서 2시간 이상 거리에 살고 있는 미국민은 20%에 그쳤다. 또 미국인 37%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평생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있고, 자신이 태어난 주를 벗어나지 않는 비율도 57%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상당히 의외라고 NYT는 지적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성공과 꿈을 이루기 위해 집이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과감하게 향하는 모습은 미국민들의 자랑인 ‘벤처정신’ 또는 ‘도전정신’을 상징해주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제·사회적 요인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선 미국도 사는 게 빡빡해지면서 젊은 세대에서 맞벌이 가구가 늘었고, 결국 ‘돈을 아끼기 위해’ 아이 돌보는 것을 조부모에게 의존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태생) 부모가 대부분 50세 이상으로 은퇴 연령에 접어들면서 손주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과도 무관치 않다.
거꾸로 미국 사회도 자녀수가 예전보다 적어졌고, 고령 부모는 병에 걸린 경우가 많아 1∼2명에 불과한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기 위해 근처에 살면서 대부분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결과로 나타난 측면도 있다. 자녀가 아픈 부모를 돌보기 위해 부모 거주지 근처로 이사 가는 경우가 많지만 돈벌이가 좋은 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부모를 자신이 살고 있는 대도시로 모셔 오는 경우도 많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처럼 부모가 손주를 돌보고, 또 자녀가 나중에 아픈 부모를 돌보기 위해서 서로 가까이 사는 경우에 대해 일종의 ‘경제학적 거래’라고도 해석하고 있다고 NYT는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이 데이터를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는 자료로 활용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대도시로 떠날 ‘기회’를 상실한 이들이 고향에 머물거나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정부가 이런 지역들에 보다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엄마곁 안 떠나는 美 젊은이들
입력 2015-12-24 2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