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적 상상력으로 살아난 분천역 ‘산타마을’

입력 2015-12-24 21:14
최광운 분천중앙교회 목사(가운데)가 24일 이규용 장로(오른쪽) 등 성도들과 함께 ‘산타마을’로 조성된 경북 봉화군 분천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분천중앙교회.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을 달리면 경북 봉화 분천역에 도착한다. 분천은 전형적인 산골 지역이다. 낙동강 상류가 U자 형태로 마을을 감싸고 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관광버스 6대가 줄서 있었다. ‘분천역, 산타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플래카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 스피커에선 조지 마이클과 앤드루 리즐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왔다. 무속이 강한 산골마을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다니….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분천역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2년 전만 해도 분천역은 이규석의 노래 ‘기차와 소나무’에나 어울릴 만한 간이역이었다. 영동선 열차가 하루 6번 지나간다. 승객 10여명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 체르마트에서 가져온 상상력은 분천의 문화를 180도 바꿔 놨다. 지난해 12월 코레일은 이곳에 성탄트리와 산타시네마 극장, 눈썰매장 등을 설치했다.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고 철암역까지 27.6㎞ 구간을 시속 30㎞로 달리는 협곡열차 내부를 성탄절 테마로 단장했다. 올해는 산타 레일바이크, 대형 풍차 등을 설치했다. 느리게 쉬어가는 ‘슬로 여행’ 문화에 안성맞춤이었다.

분천역에 산타 옷을 입히자 방문객이 주말 기준 300배 이상 늘었다. 식당과 커피숍이 들어섰다. 땅값도 평당 2만원에서 40만원으로 치솟았다.

역에서 100m 거리에 분천중앙교회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인데 1966년 설립됐다. 마을주민 50여명이 교회에 출석한다. 산타 모자를 쓴 성도와 함께 최광운(50) 분천중앙교회 목사가 전도지를 갖고 분천역으로 나왔다. 강진순(49) 사모는 “볼거리를 위해 이곳을 찾는 분들도 있지만 삶에 찌들고 허탈해진 마음으로 인생의 목적을 찾기 위해 오는 분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전도지를 건네던 이규용(79) 장로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교회사랑을 내비쳤다. “우옛든동(어쨌든지) 성탄절에 성도가 뿔어났으면 좋겠네예.”

역 안으로 들어서니 나무 난로가 있는 6.6㎡ 남짓의 대합실이 있었다. 임경오 분천역장은 “산타마을이 생기고 평일 1500명, 주말 3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지난 1년 동안 17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말했다. 임 역장은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이브가 가장 피크인데 그때는 정말 동네가 관광객들로 마비된다”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문화공연을 할 수 있도록 교회에도 개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와 분천중앙교회 성도들은 25일 오전 4시 새벽예배 후 새벽송을 돌고 정오엔 동네주민 250여명을 초청해 성탄절 만찬을 연다. 엄은자(50·여) 집사는 “내 안에 계신 아기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쁨”이라면서 “앞으로도 성탄절의 진짜 주인인 예수님을 전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97년 부임한 최 목사는 “관광객을 위한 특화된 예배와 꽃길 조성, 커플을 위한 기도 공간 등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더 이상 죽은 물고기처럼 사회·문화적 흐름에 떠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폐역이나 다름없는 분천역이 창조적 상상력 덕분에 산타마을로 변화됐듯 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노회, 총회와 함께 목회적 상상력을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봉화=글·사진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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