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큰 낭패를 봤다. 최고 사정기관의 총수 기용 문제 때문이다. 권력자로 청와대에 막 입성했는데 새 검찰총장 후보가 세 사람으로 압축돼 있었다. 2012년 대선 직전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으로 한상대 검찰총장이 불명예 퇴진한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이명박정부에서 처음 도입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가동돼 김진태 소병철 채동욱을 후보로 올려놓은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여론에 밀려 이명박정부가 여기서 중단했지만 권력자 마음에 드는 인물은 이미 추천위에서 탈락해 버렸다. 고민 끝에 정권 출범 직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제청 형식으로 호남의 특수통 채동욱을 앉혔지만 이 자(者)가 훗날 역린(逆鱗)을 건드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문제를 꼬이게 만든 추천위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것일까. 그래서 24일자로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2년 뒤 집권 말기의 총장 인선까지 내다본 원모심려(遠謀深慮)의 포석으로 읽힌다. 외견상으론 대체로 무난한 인사다. 그간 자기 사람을 심었던 ‘검찰 내 2인자’ 서울중앙지검장에 비(非)TK(대구·경북) 인사를 기용하는 등 TK 일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근데 인선 과정에서 특정 지역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인지 칼잡이를 동원해 ‘강제퇴출’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칼잡이 역할은 법무부 장관이 맡았다. 전화 한 통이라는 단순 검법만으로도 충분했다.
잘나가던 고검장과 검사장들이 그 칼에 쓰러졌다. PK(부산·경남) 출신은 축출되다시피 했다. 직전 추천위의 총장 후보였던 사법연수원 17기의 고검장 김경수와 18기 선두그룹으로 고검장 승진 대상인 지검장 강찬우 등 PK 4명이 옷을 벗은 것이다. 물러난 고검장·검사장 9명 중 거의 절반이다. PK인 김무성(부산) 문재인(거제) 안철수(부산) 박원순(창녕) 등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들과 이들이 엮일 경우 등에 칼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미래의 총장 후보군에서 아예 제거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청와대 모(某)인사가 찍어냈다는 뒷말까지 나돈다. 이렇게 퇴출당하고 줄 세우기를 강요당하면 검사들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차기 총장 후보군인 고검장급 9명 가운데 PK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말을 안 듣는 추천위가 꾸려진다 해도 반란은 꿈꿀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대신 든든한 TK 출신은 고검장에 2명이나 있다. 친정체제도 강화됐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의 연수원 동기인 19기 3명이 고검장에 오르고 19기 지검장들이 서울(동부·남부·서부)과 부산을 장악한 결과다. 집권 후반의 사정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에 TK를 앉힌 것도 그 일환이겠다.
벌써부터 뭔 소설 같은 얘기냐고?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정권 말기 레임덕에 빠지면 소설은 결국 현실이 된다. 그리고 2017년 대선을 막판에 관리할 검찰 총수에는 오로지 정권에 대한 로열티(충성심)가 가장 높은 이가 오를 것임이 확실하다. 그래야 퇴임 이후에도 방패막이가 돼줄 수 있다.
하지만 원모심려의 책략이 꼭 그대로 들어맞는 건 아니다. 기막힌 일도 벌어진 바 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 임명한 검찰총장 임채진에게 퇴임 후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했다. 그것도 같은 경남 출신의 총장이 옛 주군을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칼을 들이댔으니. 이게 살아 있는 권력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검찰의 민낯이다. 정권은 유한해 ‘권불오년(權不五年)’이되 정치적 검찰은 영원한 법이다. 사라져가는 권력과 죽은 권력은 그래서 찬밥 신세가 된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여의춘추-박정태] 검찰 내 PK 싹은 왜 잘랐을까
입력 2015-12-24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