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엄마와 열세 살 아이가 어렵게 살았다. 모자(母子)의 사연은 10년 전 지상파 방송에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엄마는 각막수술을 받고 눈을 뜬 뒤 아들에게 가장 먼저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말해 시청자를 울렸다. 모자의 사연이 최근 다시 인터넷에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 소년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원종건(23)씨다. 원씨는 2005년 MBC 프로그램 ‘느낌표-눈을 떠요’에 엄마 박진숙(53)씨와 출연했다.
모자의 사연은 애처로웠다. 원씨의 여동생은 1994년 태어나자마자 스웨덴으로 입양됐다. 이듬해엔 박씨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잘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지만 엄마는 아들을 지켰다. 박씨는 “갈 곳이 없어 공장 기숙사에서 신세지며 살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자는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버텼다. 특히 어릴 때부터 엄마의 눈과 귀가 됐던 원씨는 엄마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박씨는 방송에서 “(아들이) 엄마 눈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을 못 들어도 창피해하지 않는다”면서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엄마 손 꼭 잡고 우리 엄마라고 자랑한다”고 뿌듯해했다.
박씨는 방송 제작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각막수술을 받고 눈을 떴다. 수술에서 회복한 뒤 아들을 마주한 박씨는 자신이 잘 보이느냐는 아들의 수화에 ‘잘 보여’라고 수화로 대답했다. 빛을 다시 찾은 엄마는 ‘종건아, 우리도 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면서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방송은 꿋꿋하게 아들을 지킨 박씨를 ‘헬렌 켈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모자의 이야기는 원씨가 지난달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수여하는 삼성행복대상 청소년상을 받으면서 다시 알려졌다.
재단은 원씨가 성년이 된 뒤 가장 먼저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헌혈에도 적극 참여해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또 대학생 때 삼성증권 영리치클럽 대학생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하며 네팔 현지주민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아이디어로 삼성사회공헌상(Samsung CSR Award) 사진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원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네팔 현지 주민들과 팔짱을 끼고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도 공개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5일 원씨의 사연을 담아 ‘10년 전 우릴 울렸던 이 소년을 기억하시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온라인판으로 송고했다. 네티즌들은 멋지게 성장한 원씨를 응원했다. 해당 기사에는 “훌륭하게 건강하게 커줘서 고마워요”라거나 “감동 받아 울고 있습니다. 멋진 엄마 멋진 아들이네요” “종건씨도 대단하지만 몸이 불편해도 종건씨를 반듯하게 키운 엄마에게 큰 박수 보냅니다”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뉴스 결산! 2015’ 감동뉴스 부문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네이버는 지난 16일부터 연말까지 네티즌 투표로 30개 감동뉴스의 순위를 매기고 있다. 해당 기사는 23일 오후 현재 7.1%의 지지율과 1만1600건의 추천을 받는 등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의 격려 댓글도 2200여건을 넘어섰다.
대학교 4학년생인 원씨는 갑작스러운 관심과 칭찬을 쑥스러워했다. 그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봉사활동은 특별한 날 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밥을 먹듯 꾸준히 정기적으로 한다”면서 “어머니는 당뇨와 혈압 문제를 갖고 있지만 식단조절을 하며 대체적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어머니 보살피기 등) 제 주변의 일들도 짊어져야 하니 앞으로도 겸손하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저에 대한 칭찬이 장애를 지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면서 “국민일보 독자인 엄마가 이 기사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원씨의 꿈은 엄마의 바람대로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 4학년이라 취업할지 창업할지 고민 중”이라면서 “어쨌든 남을 위해 살고 싶다. 현재로선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를 고민하는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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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우릴 울렸던 이 소년, 훈남 됐네
입력 2015-12-24 21:24 수정 2015-12-24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