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보고?… 격하된 홍콩 행정장관 자리배치

입력 2015-12-24 21:52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이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업무보고용 연례면담 자리에서 대화하고 있다. 두 정상의 좌석 배치는 ‘일국양제’를 내세우며 나란히 앉았던 지난해(왼쪽 작은 사진)와는 달리 마치 렁 장관이 중앙 상석에 앉은 시 주석에게 보고하는 모양새처럼 비쳐져 논란이 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중국 국가주석과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의 회담 좌석 배치가 과거와 달라져 논란이 일고 있다. 대등이 아닌 주종(主從) 관계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24일 홍콩 명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업무보고용 연례 면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테이블의 중앙 상석에 앉고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측면에 앉았다.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보고하는 모습이 연상됐다. 렁 장관 옆에는 왕광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이 앉았고 맞은편에는 장더장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리위안차오 국가 부주석이 배치됐다. 렁 장관이 별도로 리커창 총리와 면담할 때도 같은 자리 배치가 이뤄졌다. 지난해 시 주석과 렁 장관의 면담은 물론 과거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에도 중국 주석과 홍콩 행정장관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SCMP는 시 주석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말하고 있지만 ‘양제’보다는 ‘일국’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했다.

시 주석은 이날 “일국양제는 확고부동하며 변하거나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홍콩에서 일국양제가 실천되는 과정에서 원래 모습을 잃거나 변형되지 않고 시종일관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관영통신 중국신문사는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관계자를 인용, 자리 배치 변화에 대해 “헌법과 홍콩 기본법에 명시된 중앙과 특구 사이의 관계를 더욱 더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 민주당의 에밀리 라우 주석은 “새로운 좌석 배치는 불필요하고 모멸적인 것”이라며 “일국양제 원칙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중국과 영국은 1984년 12월 서명한 연합성명에서 홍콩 주권 반환 5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일국양제 원칙에 따른 고도의 자치와 집행권(행정권)을 홍콩에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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