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빚의 굴레’를 쓰면 혼자 힘으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빚이란 놈은 일단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덩치를 키워 채무자에게 삶의 바닥을 보여주곤 한다.
정부가 서민금융지원제도, 개인워크아웃 등 ‘패자부활’의 숨구멍을 열어뒀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빚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잘못이요, 개인이 책임질 일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정책과 현실 사이에 놓인 이런 빈 공간을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 교회 등이 나서서 메우고 있다. ‘빚 컨설팅’은 물론 소액대출, 금융교육 등에까지 활발하게 뛰어들고 있다.
‘금융 노예’에게 희망을
‘희망 만드는 사람들’(희만사)은 빚에 짓눌리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 되레 사람을 옭아매는 상황은 어딘가 잘못돼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금융시스템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2009년 직원 3명으로 시작해 매월 200여건의 부채 상담 신청을 받는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김희철 희만사 대표는 24일 “우리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빈다. 일종의 ‘금융 노예 해방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해결할 수 없는 빚은 없다고 자신한다. ‘뿌리’를 뽑으려면 상담자의 의지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상담자 중 일부는 도박이나 주식투자 실패로 빚을 졌다는 걸 숨기기도 한다. 김 대표는 “상담자가 오면 ‘용기를 가지세요’라고 안심시킨다. 도박이든 주식이든 과소비든 빚을 지게 된 원인을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먼저 경청하면서 해결 의지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단한 상담은 무료다. 장기적인 재무상담을 받으려면 30만원 안팎의 상담료를 내야 한다. 상담 기간 동안 나눠 낼 수 있다.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상담은 때때로 심리상담처럼 진행된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고 오기도 한다. 가족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겠다며 혼자 빚을 해결하려다 더 큰 수렁에 빠지는 가장도 있다.
희만사는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때로는 야단을 친다. 김 대표는 “상담을 마친 고객이 용기를 얻었다며 품에 지니고 다니던 농약병을 그 자리에서 꺼내 버린 적도 있다”고 했다.
정부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비영리로 운영되는 사회연대은행은 소상공인 대출과 부채 상담을 한다.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힘든 취약계층에게 ‘마이크로크레디트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창업비용을 빌려준다. 혼자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기반으로 서류심사를 하고, 직무능력평가와 최종면접을 거쳐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선발되면 연 2% 안팎의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학자금 전환대출 사업도 했다. 연 20∼30% 고금리로 돈을 빌려 학자금을 댄 학생들에게 1000만원 한도에서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줬다. 다만 기부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재원에 한계가 있어 올해는 사업을 하지 못했다.
부채가 많아 자산관리가 안 되는 이들을 위해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각 지역복지관 등을 통해 부채상담이 필요한 저소득층을 모집했다. 이렇게 모인 372명을 대상으로 재무설계 교육을 하고, 1대 1 상담도 했다. 사회연대은행 허미영 간사는 “기부금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며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우리 같은 시민단체나 비영리기구가 맡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탈출할 수 있도록”
교회도 ‘세상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지난 10월 청년 25명을 대상으로 ‘청년 부채문제 해결 캠페인’을 시작했다. 빚을 갚기 위한 절차를 안내해주고, 자존감을 되찾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어떻게 빚을 지게 됐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상담을 통해 각자에게 맞는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신 빚을 갚아주지는 않는다. 단순히 빚을 없애 준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온누리교회 정운오 장로는 “청년 실업은 자연스럽게 청년 부채와 연결된다. 스스로 부채를 해결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연말까지 성과를 따져본 뒤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변호사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개인회생 절차를 돕고 필요한 비용 등을 지원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저금리로 소액을 빌려줘 자립을 돕는 소액대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심희정 박세환 기자
simcity@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빚쟁이 서민들, 희망은 어디에] 빚에 짓눌린 이들을 위해… ‘부축의 손’ 내밀다
입력 2015-12-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