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남도영] 불황의 계산법

입력 2015-12-24 18:19

큰판이 벌어지면 각자의 계산법이 달라진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탈당과 이합집산이 난무하는 것은 서로의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판이면 변수가 적다. 변수가 적으면 계산법이 비슷해지고, 혼란이 없다. 판이 커지면 변수가 많아지고, 각기 세우는 계산법, 공식이 달라진다.

내년 총선이 임박하니, 정치권에서는 서로 다른 계산법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한 친위 부대’를 만들어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계산법을 세운 듯하다. 탈당한 안철수 의원은 바람을 일으키고 세를 모아 대선에 도전한다는 계산법을 세웠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면돌파를 통해 대권후보가 되겠다는 그림을, 납작 엎드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총선 이후를 도모하겠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기업들의 계산법은 정치권보다 복잡하다. 많은 직원들의 생존이 걸려 있는 데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경제의 큰판은 이미 벌어졌다. 미국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고, 중국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산유국들마저 허리띠를 졸라맸다. 신흥국들의 경제도 위태롭다. 우리 경제를 지탱했던 전통산업은 힘을 잃어 가는데, 새로운 먹거리는 찾지 못했다. 4대 그룹 임원은 “조선 건설 철강 화학 등 우리나라 주력 기업들이 모두 위태롭다”며 “그나마 반도체와 자동차만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데, 이 두 업종이 얼마나 버틸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연말에 진행되고 있는 기업 임원회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살벌한 수준이라고 한다. 기업들은 요즘 머리를 싸매고 자신만의 계산법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삼성그룹은 호황기에 불어났던 군살들을 과감히 빼고 바이오, 자동차 전기장치(전장) 등 새로운 사업으로 선회를 시작한 느낌이고, 현대차그룹은 친환경차·미래차·고급차 분야에 진출하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SK LG GS 한화 등 주요 대기업들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기업들의 계산법은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높다.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던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 몰락했고, 혁신의 대명사였던 소니가 또 다른 혁신기업 애플에 무너졌다. 몇 년 전 조선·철강업체들이 새로운 미래성장동력으로 선택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던 풍력사업 등 에너지 사업은 이제 적자를 보며 팔아치워야 할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과감한 사업다변화를 위해 덩치가 큰 인수·합병을 시도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걸렸던 기업들도 여럿이다. 케빈 케네디와 메리 무어의 ‘100년 기업의 조건’에 따르면 세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3년에 불과하고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 1965년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 속했던 기업 중 30년이 지나도 살아남은 기업은 16개에 불과했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나마 생존을 위한 계산법을 만들어가는 기업은 형편이 낫다. 한국은행은 이번 주 외부감사 대상 기업 2만7995개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만성적 한계기업 수가 2561개라고 공개했다. 자신만의 계산법을 세우기는커녕 정부의 지원과 금융권의 대출에 의존해 버티는 기업들이다. 내년이 올해보다 좋을 것이라는 전망을 본 적은 없지만, 올 연말에는 특히 우울한 소식들만 들린다.

전망이 어두울수록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노력도 치열해질 것이다. 다만 요즘 등장하는 기업들의 계산법에 비용을 줄이고 사람을 자르는 축소지향적인 공식들만 나열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무리 어려워도 감원은 없다’고 선언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