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분의 동생은 농아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 역시 청각·언어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비장애인이었다. 그러나 1학년 때 큰 열병을 앓고 난 뒤 청각에 이상이 생겼고 발음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지속돼 급기야 정상적인 언어생활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려운 농촌 살림에 열병을 제때 잘 치료하지 못한 것이 장애를 떠안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세세한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원하는 소리만 듣고 자신의 소리만 외치는 장애를 앓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남을 위로하며 희망을 선물하는 일에 인색한지 모른다. 삶이 팍팍해서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세상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를 가슴으로 들을 수 있어야 사람들에게 소망과 사랑, 위로와 용기를 건넬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국가가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국가가 다 감당할 수는 없다.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소리가 작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얼마나 아픈지 우리들 스스로 귀를 막고 살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들어야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온전히 들어야 온전한 소리를 낼 수 있다.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낮고 천한 곳에 오신 날이다. 교회마다 성탄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한 일들을 행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탄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 어느 해보다 차분한 가운데 성탄을 맞았다. 화려한 장식과 캐럴 소리를 접하기 힘들다. 어쩌면 금년의 이러한 분위기는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좋을 수도 있을 듯하다. 예수님은 인간의 소리를 듣기 위해 오셨다. 당신의 입장에서 당신의 소리만 외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소리를 들어 주시고, 인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더욱이 예수는 이 땅의 사람들이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아파하는 이들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손가락질 받는 무리의 소리에 더 큰 관심을 가지셨다.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소리를 들어주셨다.
그렇게 모든 이의 소리에 귀 기울였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 들려주신 주님의 ‘몸으로 외치는 소리’. 인류를 향한 그 사랑의 외침은 모든 이들의 소리를 다 품으신 소리였다. 가장 힘 있는 외침이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도 마땅히 들어야 할 소리를 가슴으로 듣고,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외침을 통해 이웃과 온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최범선 목사 (용두동교회)
[시온의 소리-최범선] 성탄에 들어야 할 소리
입력 2015-12-24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