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6년을 기다렸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의 미수금을 대신 지급하는 건 ‘인도적 차원의 시혜적 금전 지급’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배상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을 받았던 지원금 산정기준은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기업을 상대로 개인적인 법적 다툼을 이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1엔당 2000원 산정기준 합리적”=정부는 2007년부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기업으로부터 받지 못한 임금 등을 1엔당 2000원으로 산정해 지급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11만2555건의 위로금·미수금지원금·의료지원금이 지급됐다.
1945년부터 보상이 시작된 1975년까지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149.8배)과 1975년 당시 엔화 환율(1엔당 1.63원), 1975∼2005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7.8배)을 반영하면 1엔당 1904원이란 수치가 나온다. 이를 근거로 산정기준을 정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산정방식이 현실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해 왔다. 1975년 당시의 엔화 환율은 현재의 8분의 1에 불과하고, 1945∼2000년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약 9만3000배이고, 금값은 14만배 뛰었다는 것이다.
헌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환율을 참작하고 있어 산정방식이 합리성을 결여했거나 부당하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해자들의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지원금의 ‘많고 적음’을 따질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시혜적으로 지급하는 돈이어서 헌법 23조에 보장된 재산권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정부는 보상 책임이 소멸됐다고 하고, 한국 정부는 보상금이 아닌 시혜라고 한다. 어디에 보상 책임을 물어야 할지 양국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한철 헌재 소장과 이정미 김이수 재판관은 “지원금에 시혜적 성격만 있다고 볼 수 없고, 환산 기준도 지나치게 낮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일본 상대 소송은 계속 진행될 듯=헌재는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위헌 여부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 조항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는지는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다. 국민 정서와 대일 외교 등을 감안해 판단을 유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헌재는 2011년 한일청구권협정 3조에 부작위 위헌을 선고했었다. 양국 간 협상 결과 해석의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해결에 나서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해석 자체가 판단 대상인 이번 사건과는 쟁점이 달랐다. 이미 2012년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례를 남긴 터여서 헌재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판단에 나설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결국 피해자들은 개인청구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일본 정부·기업과의 소송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법원은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등을 상대로 제기한 11건의 재판을 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승소한다 해도 일본에서 집행 판결을 받아야 하는 등 실제 배상까지는 갈 길이 멀다.
피해자 유족 윤경남(75)씨는 “문제를 풀고 화해를 해야 하는데 자꾸 시간만 간다. 양국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지 않을까 무척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헌재, 강제징용보상법 합헌 결정] 알맹이 없는 6년 만의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들 울분
입력 2015-12-23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