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전쟁… 정부-교육청 싸움에 파국 치닫는 보육

입력 2015-12-23 21:08 수정 2015-12-24 01:10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왼쪽)이 2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동 기자회견 중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조희연(서울) 장휘국(광주) 이청연(인천) 장만채(전남) 교육감. 연합뉴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전쟁’이 다시 불붙었다.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보육대란’은 눈앞으로 다가왔다.

교육감들은 ‘대통령 면담’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정부가 교육감들을 고발하면 법적 대응도 각오하겠다는 강수를 던졌다. 이에 맞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나란히 보도자료를 내고 “누리과정 예산 편성은 시·도교육청의 법적 의무”라며 예산 편성을 다시 촉구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답변을 듣기 위해 올해가 가기 전에 면담하고 싶다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협의회장인 장휘국 광주교육감을 비롯해 조희연(서울) 민병희(강원) 이청연(인천) 장만채(전남) 교육감이 참석했다.

교육감들은 정부와 국회가 해결 의지도 관심도 없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협의회는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문제를 일부 시·도의회와 교육청 책임으로 떠넘기고 법적 조치로 강제하려는 정부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했다.

협의회는 각 교육청이 부채를 잔뜩 안고 있는 상황에서 누리과정까지 떠맡으면 ‘교육대란’이 온다고 난색을 표했다. 시·도교육청의 지방채무는 올해 17조1000억원으로 전체 예산 대비 28.8%를 차지했다. 2013년 10조원에서 가파르게 증가했다. 협의회 측은 “일부 교육청은 부채 비율이 40%를 넘어 법적으로 지방채 발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7개 시·도교육청(서울·경기·세종·강원·전북·광주·전남)은 내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서울·경기·광주·전남의 지방의회는 형평이 맞지 않는다며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전액 삭감했다.

나머지 시·도 역시 2∼8개월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만 책정했을 뿐 1년 치를 모두 반영한 곳은 없다. 전국적으로 내년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은 2조1274억원이다. 정부가 3000억원을 우회 지원해도 1조8000억원이 부족하다.

협의회는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단기 해법도 내놨다. 정부가 시한을 정하고 부족한 예산 1조8000억원을 마련해주면 지방의회와 협의해 긴급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정부가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따르지 않는 교육감을 고발한다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누리과정이 누구 책임인지 법정에서 다퉈보겠다는 말이다.

반면 복지부는 서울시의회가 내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보도자료에서 “누리과정 예산은 유아교육법 시행령,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등에 따라 교육청이 반드시 편성·지출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갖고 있다”면서 “7개 시·도교육청은 법령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이월액·불용액 축소 및 중복사업 구조조정 등에 소극적인 시·도교육청이 보육대란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24일 차관이 직접 브리핑을 갖고 누리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전수민 민태원 기자 suminism@kmib.co.kr